밸런스를 추구하는 완벽주의 브랜드
처음 이솝이라는 브랜드의 이름을 들었을 때 "설마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그 이솝 우화의 이솝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맞더라고요. 게다가 매장을 방문해 보면(심지어 제품에도) 여기저기 명언들이 막 쓰여 있는데, 제품이랑은 하등 관계없는 이것들은 도대체 무슨 의미지라는 의구심이 들게 만들더라고요.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건축가 출신의 설립자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이솝 우화처럼 단순하지만 명료한 메시지를 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솝 우화는 남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혜를 담은 책입니다. 즉, 남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음... 이 글의 목적에 맞게 표현을 조금 바꾸면 "남들과 밸런스를 맞춰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그런 책의 제목을 차용한 브랜드답게 이솝 브랜드의 주요 메시지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밸런스"입니다. 그것도 병적으로 "완벽한 밸런스"를 추구하죠.
오늘 이솝 리뷰는 그 밸런스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리뷰하고자 합니다.
1. 천연 성분과 화학성분의 밸런스
흔히들 이솝을 천연 성분만을 사용하는 브랜드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송스럽게도 아닙니다. 사실 이솝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제품이 천연 성분만을 사용했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몇몇 제품은 천연화장품이 맞습니다만, 전체 제품을 면면히 살펴보면 화학 성분들도 꽤 들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솝의 제품 개발 방향은 명확합니다. 천연 성분이든 화학성분든 제품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성분들을 선정하고 조합하여 안전하면서도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그래서 그들은 사용하는 성분 하나하나를 최고 수준으로 분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선정한 성분들의 최상의 조합을 찾아냅니다. 그 작업은 시간이 매우 필요합니다. 그래서 이솝은 한때 1년에 한 개의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했습니다. 개발 기간이 가장 오래 걸린 것은 4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고객들이 이솝을 천연 성분만을 활용한 브랜드로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로마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인데, 아로마 오일도 그 들이 선택한 최고의 성분 중 하나였을 뿐, 천연 성분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2. 주변 환경과 밸런스를 맞춘 인테리어
이솝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인테리어입니다. 백화점을 제외하고는 이솝은 같은 콘셉트의 매장이 없는데, 건축가 출신의 창립자가 인테리어에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다"라는 철학을 접목했기 때문입니다. 즉, 주변 환경을 고려해서 거부감이 없지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추구하는데, 매장 방문객들에게는 매장마다 새로운 체험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의 다양성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지게 됩니다.
이솝의 인테리어가 주목을 받은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제품 디자인의 단순함 때문입니다. 짙은 갈색 병에 채도가 낮은 라벨을 두르고 검은색 글자를 쭉 작성한 제품의 단순한 디자인 덕에 어느 인테리어에도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매장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하는 이솝의 인테리어에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실제로 제가 운영하고 있는 브랜드의 경우는 제품 디자인의 화려함과 다양성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 인테리어 디자인에 큰 제약 받음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3.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
사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좀 인정하기 싫은 내용이지만 그들의 주장인 만큼 적어 보려고 합니다. 제가 호주 이솝에 견학했을 때 일입니다. 저는 그들의 사무실을 보고 경악했습니다. 학교처럼 모두 한 방향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걸상과 모든 직원이 정해진 같은 노트와 펜만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그 외의 모든 사무용품 모두 정해진 것만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브랜드는 일하는 사람이 브랜드 철학에 순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주어야 하는데,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의 철학을 완. 벽. 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환경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의 공간으로 넘어갔을 때 그 자유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일과 라이프의 밸런스를 회사 차원에서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방향성에 대해서는 잘 이해가 되지는 않고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그들의 결과물은 그것을 증명하는 듯해 보였습니다.
개인적 경험 때문일까요? 이솝의 경영철학이 다른 브랜드에 비해서 공감이 안되는 부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솝이 싫다는 아닙니다. 좀 괴짜스럽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사실 이솝은 바디 카테고리 브랜드의 한 획을 그은 브랜드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솝을 타깃으로 하는 브랜드도 많지만 그것을 넘어 바디 카테고리의 브랜딩을 고민할 때 반드시 참조하게 되는 브랜드니까요. 그만큼 매력이 많은 브랜드라는 뜻이겠죠. 돈키호테 같은 괴짜가 매력적인 것처럼요. 이솝이 돈키호테 같은 매력을 언제까지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