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 전부터 이 영화가 받는 비판, 그리고 종종 보이는 비난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전작 <검은 사제들>을 인상깊게 본 관객이자, 오컬트 장르를 선호하는 팬으로써 나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기에... 어찌됐든 극장을 찾았다. 부정적인 후기의 이유도 확인했지만, 아주 나쁜 영화까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으니 참고 바란다.
이 글은 내용에 대한 분석을 어느 정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아래부턴 스포가 있으니 조심하시길.
<검은 수녀들>은 강성애 유니아 수녀와 이수영 미카엘라 수녀가 주도하는 가운데 주변 인물들이 이를 보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두 인물의 캐릭터성과 케미는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성수를 약수통에 담아 질질 끌고 다니며 벌레 보듯 악마를 내려다 보는 유니아 수녀, 아이스크림과 탕후루을 맛깔나게 먹는 mz한 미카엘라 수녀. 상반된 입장으로부터 시작해 상호 계약적인 관계가 되었다가 이내 사제지간을 넘어 자매가 되는 그들의 연대는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영화가 행하는 전작 <검은 사제들>에 대한 언급들도, 세계관을 좋아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즐겁게 다가오지 않나 싶다. 유니아 수녀가 김범신 베드로의 제자라는 것은 단순한 부연설정을 넘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최준호 아가토의 특별 출연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영화를 전체적으로 끌고 간 것은 송혜교의 빼어난 연기력이었다. 직전 작품 <더 글로리>의 배역인 '문동은'의 캐릭터와 유사하나, 지겨운 답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악에 대한 사적 처벌도 불사하는 정의의 사도'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마를 행하는 수녀'로 적절히 변형한 듯 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오컬트 장르로서 신선한 것이 있다면 악마 '가미긴'을 처리하는 방식이겠다. 유니아는 암이 자라고 있는 자신의 자궁으로 그것을 불러들이고 동귀어진한다는 선택을 했다. 영화가 자신이 매력적으로 그려낸 인물을 마지막에 가 희생시키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큰 선택이겠으며, 그 내용이 경이한 만큼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관객도 많을 것이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자면, 여성만이 가지고 있는 자궁이라는 장기가 일종의 역할을 하고 있긴 하지만 기존에 답습되곤 했던 '생명을 품고 자애롭게 길러낸다'는 수동적인 생산에서 벗어나, 자의적인 선택으로 악을 가두고 징벌하는 능동적인 집행자로 모습이 변모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오컬트 장르에서 여성 서사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에 너무 치중하고 만 것일까. 개인적으로 여성 서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입장은 전혀 아니며, 여성들의 연대를 다루는 대중문화 작품이 많은 지금의 추세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계속되었으면 좋겠으며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특히 문학에서). 그렇다면 반문해보아야 하는 것은, <검은 수녀들>이 능동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을 넘어 무엇을 이루었는가이다(이제 그 정도의 성과를 거둔 작품들은 너무나도 많기에).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쉬운 부분들이 많다. 부마자의 입을 빌려 악마가 쏟아내는 성추행들은 일단 차치하자(아무래도 그것은 중세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영화가 불러들인 것이니). 유니아가 자신의 정의를 실현하는데 장애물이 되는 남성 사제들은 '수녀가 무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반복하는 것 이상으로 유니아의 걸림돌이 되지 못 한다. 작가가 상상하기에 '여성 성직자, 구마하는 수녀'로서 마주할 수 있는 어려움은 딱 그정도였을까. 물론 현실이라면 그럴 수 있겠으나 첫째로 장르 영화의 서사에서 갈등이란 가장 핵심적인 흥미요소이겠고, 둘째로 그러한 어려움 설정은 이제는 진부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녀를 가로막는 또 다른 인물인 전문의 바오로 신부는 구마를 미신으로 치부한다. 이 역시 오컬트 장르에서 지나치게 반복해서 사용해온 난관이다. 유니아 수녀 앞에 놓인 장애물이 뻔하고 진부할수록 가벼워지는 것은 결국 유니아라는 인물 서사의 무게일 수밖에 없다.
유니아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함께 보는 관객으로서, 우리는 그녀가 부마자들을 구하는 것에 어째서 그토록 진심인지, 어떤 수단과 방법이라도 활용하는 유연성과 자신을 막아서는 구시대적 사고관에 열성적으로 반항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으나 영화는 답을 하고 있지 않다. 물론 이런 인물들에게 언제나 어떤 계기나 가슴 아픔 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설정들 역시 진부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러한 선택으로 인해 남는 것은 '사람 살리는 일이라서' 라는 반복되는 외침 뿐이다. 그것도 멋이라면 멋이겠으나...
좋은 예를 들자면, <검은 사제들>에서 부마자인 영신은 김범신 베드로와 학생과 스승으로 가까운 사이였고 괴팍한 행보 탓에 외톨이였던 김범신을 유일하게 믿어준 인물이었다. 최준호 아가토는 자신이 공포로부터 도망친 탓에 여동생이 죽었다고 자책했으며 영신에게 들린 악마가 그러한 과거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그를 압박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구마에 적극적으로 임하자고 다짐하여 죄책감을 씻어내고자 한다. 그들은 부마에 매달려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했다. 반면, 인물에게 부여된 동기가 평면적으로 변한 순간 <검은 수녀들>의 구마 장면도 강한 인상을 남기기 어려워진다. 그 때문인지 한 두번 정도 임팩트 있게 사용했으면 좋았을 성수를 들이붓는 장면이 남발되고, 악마에 씐 부마자가 말이 너무 많아진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작의 부마자는 영신과 비교하면 캐릭터성도 부족했다. 영신은 악마가 다른 육체로 넘어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그것을 붙들었으며 악마는 적절한 때마다 독설과 초현실적인 능력을 사용해 구마 장면을 공포로 몰고갔다. 이번 작의 악마는 마지막 구마에서는 할 줄 아는 것이 '무슨 년 무슨 년' 운운하는 욕지거리 뿐인 것 같으며... 결과적으로 구마가 수녀들과 부마자의 합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부마자는 영화 전개를 위한 소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영화에 한국의 무속 신앙으로 모자라 타로카드까지 끼어들었지만 색다른 요소로 느껴지기보다는 다소 난잡하다는 인상을 준다. 앞서 비판한 모든 요소들은 영화가 하이라이트 장면을 위한 빌드업을 충분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둔 자충수였다고 생각한다. <검은 사제들>에서 '마르바스'의 이름을 들은 나는 공포와 희열에 전율했지만, 이번의 '가미긴' 이름 앞에서는 '이제야 말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영화의 마지막 구마는 똑같이 곤경으로 가득했으며 악마의 온갖 방해 탓에 더디게 전개되었지만, <검은 수녀들>의 구마가 유독 지지부진하고 같은 작업의 반복처럼 느껴진 것에는 이런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유니아의 희생에도 의문이 남는다. 왜 <검은 사제들>에서 했던 것처럼 악마가 깃들 재물로 가축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유니아 몸에 악마가 옮겨왔다 하더라도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최소한 전자의 질문에는 영화가 답을 했어야 한다.
또한, 그동안 반복되어 온 여성에 대한 진부한 처리 방식을 여성 서사마저 답습해야 했는가. 앞서 유니아의 희생을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에는('소극적으로 희생당하거나 수동적으로 무언가를 생산할 뿐인 여성의 지위를 뒤바꾸려는 시도') 상당한 수고와 의미부여가 들어간다. 결국 또 다시 그녀들은 희생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끝내 원점으로 돌아오고 마는 셈이다. (미카엘라는 앞으로 어쩌고!)
또 하나... 하고 싶은 얘기는 전체적인 만듦새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인상이다. 장면과 장면들이 공백을 두고 떨어져 있는 듯하고 지나치게 길게 보여준다거나 불필요한 장면을 보여주는 경우들이 있다고 느겼다. 이런 장르의 영화는 보여줄 것을 안 보여주는 것은 괜찮아도 보여줘야 하는 것보다 많이 보여주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이지 않은가(가령, <파묘>는 잘 가다가 '오니'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무게감이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마지막 구마 장면을 향해 달려가지 못하는 느낌, 그것이 의도적인 지연이 아니라 용을 쓰고 있음에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컬트적인 공포보다 장르 속에서 새로운 연대 서사를 보여주는 것이 의도라고 가정하고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영화란 거대한 산업이고, 특히나 오컬트처럼 장르적인 색채가 매우 뚜렷한 경우에는 작품이 반드시 보여줘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장르를 배신하고 보여준 것들이 그 실망감을 잊을만큼 훌륭해야할 것이다(대표적으로 전쟁 영화의 문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어긴 <덩케르크>가 있다). <검은 수녀들>은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장면 하나를 콕 집어 혹평을 한다면... 희생한 유니아와 부마자 소년이 눈부신 바닷가를 배경으로 만나 아름다운 말을 주고받는 장면. 제발 이런 억지 감성 그만하자.
내내 혹평을 쏟아내고 이제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무안하지만, 그래도 표값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다. 아무튼 간에 오컬트 장르로서 해야 하는 최소한의 책무는 다하지 않았을까.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나라는 오컬트의 불모지이며 투정 부릴 상황이 아니기에... 이런 류의 장르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2시간만 내보는 것도 좋겠다.
<검은 수녀들> 한줄평
나는 아직 장재현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