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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운석> <여름 손님입니까> <최애의 아이> 리뷰

<소설 보다 겨울 2024> 후기

by 김사자


KakaoTalk_20250202_204355472.jpg 사진이 너무 대충이라 죄송...


계절마다 세 편의 소설을 싣는 이 단편집은, 지난 봄과 여름이 매우 실망스러웠지만 가격이나 책 두께가 부담이 없고 기획 자체가 좋아서 습관처럼 사서 읽게 된다. 이젠 작년이 된 <2024 겨울>은 실린 세 편 중 두 편이 읽을만 했으니 꽤 괜찮았다. 다만 나머지 하나가 좀 끔찍하긴 했다.




성혜령, <운석>


부부였던 백주와 인한, 백주의 친구이자 인한의 여동생인 설경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인한은 자살했으며 백주는 시댁 식구들 앞에서 죄인이 된다. 설경은 친구였던 시절부터 독자에게 썩 좋은 인상을 주는 인물은 아닌데, 백주의 가정사나 인한의 죽음 이후 백주의 심경에 대해 넘겨짚기를 잘 하며 무해함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서 백주의 마음에 생채기를 입힌다. 설경은 막내로써 오빠에게 손해본 것이 많다고 그가 죽을 때까지 주장해왔다. 백주는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아버지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사람을 어림잡아 보지만, 이를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한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죄책감은 느끼지만 그것을 해소하거나 혹은 미리 방지하려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인물로, 인한에 대해서도 그가 가진 마음의 아픔에 대해 그것이 자기 탓이냐며 방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복잡한 듯 명료한 인물들의 관계가 마음에 들었다. 관계에서 각자의 입장에 따른 부채감과 죄책감 등은 보편적인 감정이기에 나에게 대입하며, 인물에게 공감하거나 비판하기도 하며 즐겁게 읽었다.

'운석'은 백주와 설경을 인한의 주변으로 모아놓는 중심 소재이다. 그것은 두 인물 모두 느끼고 있는, 자신이 인한을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상징한다. 운석에서 "꺼내줘"라는 속삭임을 듣는 것은 그들 뿐인데, 운석이 그런 소리를 낼리는 없으므로 결국 운석의 구멍으로부터 구슬픈 중얼거림을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를 드는 사람들의 내면인 것이다. 운석은 인한이라는 우주가 견딜 수 없던 것을 뱉어내듯이 백주(혹은 설경)라는 행성으로 불시착시킨, 새까만 응어리이다. 그러므로 백주와 설경은 그것으로부터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었을 때는 사람을 죽인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소설은 설경보다는 백주에게 호의적인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마지막 즈음에서 밝혀지는 것은 백주가 인한에게 취했던 다소 이기적이고 소극적이며 방어적인 태도이다. 오히려 설경은 인한에게 끼친 영향은 부부였던 백주가 더 중대해 보임에도 "나쁜 년"이라고 자신을 지칭해가며 자신의 죄책감(혹은 잘못)을 나름대로 응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운석(죄책감의 상징이자 인한의 응어리)은 지금 설경보다는 백주의 소유이며, 그것을 잃어버린 것 역시 백주의 행동일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오빠 버린거야"는 질책을 받는 것 역시 백주이다.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마지막에 갑자기 등장한 '지진'이다. 납골당에서 나오던 그들은 갑자기 지진 소식을 공유하는데, 그 지진에 의해 백주가 발 밑이 꺼지는 것을 느끼며 소설이 끝난다. 나는 소설이 잘 가다가 마지막에서 넘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그 지진은, 설경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마도 백주의 심리(마침내 자신이 인한에게 했던 잘못을 인정하며 받은 충격)를 반영한 것이겠으나. 그래도 너무 무책임한 처리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다. 운석이 외부에서 갑자기 던져진 충격이라면, 지진은 내부에서 찾아온 충격으로 같은 결에 놓을 수는 있겠지만 조금 더 섬세하게 처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래도 이 작품, 나름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쉬웠던 점만큼 좋았던 점도 확실했다. 성혜령 작가가 2023년에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던 소설인 <버섯 농장>도 읽었었는데, 그 작품보다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이주혜, <여름 손님입니까>


이번 단편집에서 제일 좋았던 소설!

'나'는 엄마의 부탁으로 결혼식에 가기 위해 일본에 와 있다. 죽은 외삼촌의 딸인 언니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엄마와 성이 같은 그녀의 첫째 딸처럼, 그리고 언제나 각별하게 느껴진 '나'의 친언니처럼 여겨졌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그들을 두고 일본으로 떠났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의 딸의 결혼식이라며 엄마를 30년만에 초대한 것이다. 엄마는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은 될 수 없다며 '나'를 보냈다. 호텔에서는 기모노를 입은 중년 여성이, 식장으로 가는 길은 교복을 입은 소녀가 '나'를 보필한다. 그녀들은 어째 마음을 읽는 듯 하다. 그러나 소녀는 결혼식장이 아닌 사찰로 '나'를 안내하고, 그곳의 연못에서 '나'는 묻어두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마주한다. 어느 여름 언니와 수영장에 갔던 '나'는, 제 차지였어야 할 언니가 또래 여학생을 데려와 자신이 받았어야 하는 관심을 그녀와 나눈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머슴애 같'은 그녀 앞에 언니는 평소보다 들 뜬 모습이었다. 언니의 품에서 떨어져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실신했던 '나'가 깨어나자 언니는 울며 끌어안았지만, '나'는 언니를 밀쳐냈다. 회상으로부터 빠져나온 '나'는 급하게 사찰을 나와 결혼식장으로 향하지만, 목적지에서 발견한 것은 마주보고 있는 절과 호텔에서 장례식과 결혼식이 동시에 치뤄지는 모습이다. '나'는 둘 중 어디에 언니가 있을지 구별해내지 못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간다."


30년 만에 언니를 만나러 일본의 호텔에 와 있다는 상황만으로 '나'는 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들인다. 기모노 입은 여성과 교복 입은 소녀는 손님으로 '나'를 맞이하는 동시에 '기억'이라는 형태로 그녀를 위한 손님이 된다. 소녀는 '나'를 결혼식장의 여름 손님으로서는 목적지가 아닌 곳, 그러나 언니의 여름 손님으로서는 목적지인 곳으로 이끈다. 즉, 수영장에서의 기억을 보게 만든다. 이 회상은 전체 소설의 변곡점이자 중심으로, 의문스러웠던 소설 전체에 환상이거나 비일상적 경험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언니는 자신을 죽였다'는 언급에서, 죽은 것은 언니일까 혹은 언니의 마음이나 내면의 다른 어떤 것일까. 언니의 생사가 묘연해진데다가, 회상에서 등장하는 언니 나이 또래의 여성(언니가 좋아했던 )은 '언니가 결혼해서 낳은 친딸의 결혼'을 의문에 부친다. 그와 동시에 기모노 입은 여성과 교복 입은 소녀의 정체는 불특정한 타인이 아니라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들 중 하나, 혹은 다수를 동시에, 그리고 그들의 과거 혹은 현재 혹은 미래를 반영하는 것으로 좁혀진다 (좁혀지는게 맞나 싶지만) 작가가 인터뷰에서 언급하듯이 그녀들은 언니의 생모, 언니, 언니의 선머슴 같은 소녀, 언니를 잃은 나 혹은 언니의 딸의 모습일 가능성을 가진다. '나'는 손님으로 환대받는 동시에 '나'를 환대하는 주체들이 불러들인 기억 앞에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불가항력적으로 환대한다(자크 데리다!). 그리하여 언니의 초대는 결혼식을 보게 하려는 것일수도, 장례식을 보게 하려는 것일수도 있다. 언니는 살았을 수도 죽었을 수도 있다. 그게 중요하다기 보다 '나'는 언니의 유령 앞에, 살았든 죽었든 '나'에게는 유령처럼 인식될 언니 앞에서 영원한 환대를 약속할 수밖에 없다. 언니는 무엇에도 제약받지 않는 유령처럼 '나'에게로 도래할 것이고 여름의 수영장을 불러들일 것이며 여름 손님이 되기를 강요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엄마가 언니의 초대를 '나'에게 넘긴 것은 합당하며 애초부터 초대되어야 하는 것은 '나'이지 않았을까. 나는 여름 수영장의 장본인이지만 그 사건으로 두 명의 엄마를 잃은 사람으로, 그날의 여름 앞에 다시 손님이 되어야만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손님과 유령은 동의어가 된다. '나'는 그것의 방문 앞에서 어떤 거절도 할 수 없고 다만 그것을 환대할 뿐이고, 그것은 '나'를 찾아오는 것인 동시에 '나'의 상태이기도 하다.

사실 이 소설을 읽는 당시에 데리다로 읽어낼 생각을 하진 않았다. 뒤에 실린 인터뷰에서 작가가 직접 '데리다의 환대'를 언급하긴 했지만, '나도 후기에서 언급정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쳤다. 그런데 막상 써내려가니 데리다의 개념들을 가져와 데리다식으로 풀이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지금 보니 작가가 데리다에게 영감을 받은 수준으로 그의 철학과 밀접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올해 본 첫 소설로 꼽을 것 같다. 난 데리다가 좋다. 흥미로운 노인네. 어쩌다보니 데리다에 대한 고백으로 후기가 끝나버렸다.




이희주, <최애의 아이>


원래 여기엔 이 소설에 대한 비판(비난)이 적혀 있었는데... 다시 사유해볼 필요를 느낀다. 이 소설은 문제작일까? 내가 이 소설에 느낀 일종의 불쾌감 역시 이 소설의 먹잇감인가? 잘 모르겠다. 일단 보류한다.




이번 소설집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나로서는 성혜령 작가는 다시 보았고, 이주혜 작가는 처음 만났다. 2/3가 괜찮았으면 타율이 꽤 높은게 아닐까. 젊은작가상이든 소설 보다 기획이든, 최근 소설에 대해 불만이 많았는데(나만 그런게 아니라 주변에서 자주 들린다...) 정상화가 되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아버리면 봄 호도 기대할 수 밖에 없는데. 책값이라도 싸서 다행이다. 이 소설집, 칭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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