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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04. 2023

짜장면과 에델바이스

답은 찾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나와 내 아내는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매일 둘이 같이 아침 첫 티타임 시간에 골프를 친다.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하려면 보통 5-7홀밖에 치지 못하니 매일 쳐도 둘 다 백돌이, 백순이 실력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아내의 드라이버는 작년까지 훌륭했다. 혹 지인들과 골프를 치게 되면 "믿고 보는 드라이버"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안정적으로 드라이버를 잘 쳤다. 


그런데, 올해부터 갑자기 드라이버가 난조를 보이는 거다. 위로 뜨고, 땅으로 굴러가고, 좌로 우로 정신없이 흩어진다. 몇 달을 고생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도 하지 않고 포인트 레슨을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갑자기 "믿고 보는 드라이버"가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답한다. 


골프를 시작하고 어느 유튜브 영상에서 본 대로 계속 "에델-바이스"리듬에 맞춰서 드라이버를 쳤는데, 올해 잘 안 맞기에 어제 본 유튜브 영상의 추천대로 이제는 "짜장-면"이라는 리듬에 맞춰 친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다시 공이 잘 맞는다고 - 그러니 아마도 리듬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말을 듣고 내 대학 시절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나는 대학생 시절에 잠깐 학교 밴드에서 베이스 기타를 친 적이 있다. 그 때 동기들과 함께 준비하던 리사이틀 곡 중에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라는 곡이 있었다. 그 곡에는 지속적으로 반목되는 베이스 기타의 테마 같은 애드립이 하나 있는데, 높은 음부터 낮은 음까지 쭈욱 내려오는 9 혹은 17음으로 이루어진 음계였다. 


악보를 구할 수 없던 때라 귀로 듣고 따라 치는 것이었는데, 밴드에 들어가 베이스 기타를 처음 잡아 본 나는 나름대로 베이스 기타에서 음을 찾아가며 운지법을 만들어 연습을 했다. 그런데, 내가 치는 방식으로는 연습을 해도 9음 혹은 17음의 부드럽게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연주가 영 듣기 거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기타를 치는 선배가 우리의 연습을 지켜보다가, 내게 그 부분은 그렇게 치는 것이 아닐 것이라며 기타 식의 운지법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따라해 보았더니, 처음이라 어색하기는 했지만 운지는 더 편했다. 그렇게 문제는 해결되었다.


2년 후에 내가 연습실을 찾아갔을 때, 내 2년 후배들도 Goodby to Romance를 연주하기로 하고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베이스 기타를 치는 녀석이 내가 잘 못 치던 운지법으로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상대로 연주가 매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잘난 척하고 내가 배웠던 운지법을 알려주었다 - 아마도 그렇게 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치는 것일 거야, 라고 말하면서. 선배 노릇을 한 것 같아 뿌듯했다. 


그런데, 그 후배들 발표회에 가 보았을 때, 베이스 기타를 치는 후배는 내가 알려준 방법이 아니라, 내가 잘못된 운지법이라고 생각했던 방법으로 연주를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연주는 매끄러웠다. 


그 때 알았다. 운지법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내가 충분히 그 운지법을 익히기 전에 멈추었을 뿐이라는 것을. 운지법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이 생각하는 더 좋은 답이 내게도 정답이 되는 건 아닌데, 나는 너무 쉽게 내가 좇던 답을 버렸다. 물론 새로 찾은 답으로 연주를 잘 마쳤으니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답은 그 운지법 하나라고 철썩 믿어버린 그 시절은 후회가 된다. 아마도 나는 그 때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렇게 주어진 답을 정답으로 덥썩 받아들고 내 답을 버렸을테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언제나 항상 통하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짜장면이 정답인 것도 아니요, 에델바이스가 오답인 것도 아니다. 아마도 아내의 드라이버가 망가진 것은 리듬을 잊었기 때문이고, 그럴 땐 그저 리듬을 잘 보완해주는 단어가 마법의 주문이다. 오늘은 그것이 짜장면이고 그래서 짜장면이 정답일 뿐이다. 하지만 혹시 아는가 - 내년에 아내는 짜장면을 버리고 다시 에델바이스를 외우고 있을지.


내가 찾은 답만이 내게는 정답이라는 걸 알게 해 준 그 후배 녀석에게 감사하다. 내가 본 공연 중에서 가장 값진 공연이었다. 


정답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고, 내가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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