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를 나비로 만드는 기술
처음 직장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나는 직장인의 목표는 사장이어야 한다고 배웠다. 처음에야 당연히 하찮아 보이는 업무로 시작을 하겠지만, 그 모든 일을 사장이라는 생각으로 하다보면 사장이 되어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직장인의 자세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말이 너무 좋게 들렸다. 그리고, 지금도 그 조언이 내가 받은 훌륭한 조언 중 하나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스스로를 사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사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늘은 같을지 모르나 내일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내가 사장이라고 생각하면 내 시야의 범위가 달라지고 내 결정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달라진다. 그런 자세로 회사 생활을 하던 신입 사원 시절이 내 배움이 가장 컸던 때였다.
이와 관련한 유명한 그림이 하나 있다. 공사 중인 성당 앞에서 두 석공이 돌을 다듬고 있는 모습이다. 지나가던 행인이 두 석공에게 무엇을 하는 중이냐고 묻자, 한 석공은 “돌을 깎고 있다”고 대답했고 다른 석공은 “성당을 짓고 있다”라고 대답했다. 당신이 일을 맡기는 사람이라면 어떤 석공과 일하고 싶은가? 어떤 석공이 더 좋은 결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되는가?
다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었다. 사장은 한 회사에 한 명 뿐이라는 거. 사장이 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대비는 온전히 사원의 몫이라는 거.
애벌레는 더 때깔좋고 통통한 애벌레가 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지만, 나비가 될 수도 있다.
도토리는 더 토실토실해져서 도토리 묵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지만, 떡갈나무가 될 수도 있다.
회사에 사장은 한 명 뿐이라는 것을 회사 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 지나서야 깨달았다. 하지만, 더 나은 주임, 더 나은 대리가 될 수 있다는 눈 앞의 작은 목표가 나비도, 떡갈나무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때깔 좋은 애벌레, 토실토실한 도토리가 되는 것에 집중하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히도 대리, 과장, 부장 승진마다 1년씩 쉬어가고, 또 이번에 부서장 승진에서도 낙마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있을 여유가 내게는 없었고, 그러답니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고 머리를 굴려 다른 어떤 길이 있는지 모색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원숭이를 잡을 때 입구가 좁은 망 안에 큰 과일을 넣어 놓으면 원숭이는 과일을 잡을 손을 망에서 빼내지 못하고 사냥꾼에게 잡힌다고 한다. 과일을 놓으면 도망갈 수 있는데 욕심 때문에 잡히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기 위한 예시로 많이 쓰인다. 요즘은 월급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도하지 못하는 직장인에 대한 비유로도 많이 쓰인다.
나도 한 때는 내가 원숭이인가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론은 아니다였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혈혈단신이거나, 내가 내 한 몸만 챙기면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상황을 쉽게 버릴 수 없다. 이건 욕심이 아니라 이성적인 판단이다. 먹여살릴 가족이 있는데 성질대로 사표를 쓰는 것은 무모하다.
그러니, 답은 양다리다.
지금 열린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리고 새 문을 열기위한 시도를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으니 열려 있는 문고리를 잡고 근처에 있는 문을 열심히 두들겨 보아야 한다.
나는 과장 승진 탈락 때부터 양다리를 결심하고 나름대로 많은 시도를 했다.
처음에는 자격증을 시작하는 것이 좋아보였다. 그래서 한의대 편입을 준비했다. 이과생에게 낯설 수 밖에 없었던 논어, 맹자 등 한문 공부를 비롯해서 영어공부까지 주말마다 틈나는 대로 편입학원을 다니면서, 밤잠 줄여가면서 준비했지만, 결과는 지원한 대학 모두에서 낙방이었다.
그 다음은 MBA였다. 후배가 이미 MBA 준비를 했고, 합격하여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라 정보는 충분히 있었다. MBA를 하고 와서 아시아 지역의 head를 노려 보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MBA 준비를 시작했을 때 뜻밖에도 UN이라는 더 좋은 기회가 보였다.
대한민국은 UN에서 분담금 대비 직원 채용이 적은 나라라서 under-represented country로 분류가 되는데, 같은 조건이면under-represented country의 사람을 우선 채용하는 특혜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MBA 준비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마침 FAO에서 아시아권에 사람을 보내 under-prepresetned country에서의 채용을 진행한다는 고지를 보았다. 채용 기간은 3년이었지만, FAO의 경험이면 한국에 돌아와서도 동종 업계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을 듯 했다.
다행히 내 자격으로 조건이 충족되는 자리가 있어서 열심히 서류를 준비하여 지원을 했는데, 서류 전형을 통과하게 되어 역삼역 부근의 한 호텔에서 면접을 보았다. 워낙 좁은 문이라고 들었기에 기대는 크지 않았으나 예상치 않게 면접관에게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너무 기뻤으나 문제는 합격자를 바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 – 그 해 연말에 이번에 지원한 자리에 대한 채용 공고가 뜰 테니 다시 지원을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뽑을 자리에 대한 예비 심사 정도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그 면접관은 그 자리에 내가 지원한다면 다른 과정 없이 채용될 거라며 꼭 지원하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매일 같이 FAO website를 보며 내가 지원할 부서에 채용 공고가 나기를 기다렸으나 그 해 겨울에는 아그 부서에 채용 공고가 뜨지 않았다. 1년을 더 기다렸으나, 역시 자리가 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 만은 없고, MBA 유학을 갔던 후배도 곧 돌아올 예정이니 나도 빨리 MBA 라도 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의학대학원 제도가 생겼다. 아, 원래 이과니 공부는 따라갈 수 있겠고, 학위도 있으니 입시에 불리하지는 않겠다 싶어서, 그리고 기왕 도전할 거면 1회차에 도전해야겠다 하는 생각에 저녁마다 의학대학원 진학을 위한 학원을 다니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준비를 했다. 다행히 MEET 라고 불리던 시험 준비는 크게 어렵지 않았고, 모의고사 때마다 점수가 좋아 학원에서도 합격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다만, 너무 오래 걸리는 학업 일정과 내 나이 때문에 준비를 하면서도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캐나다에 몇 년간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생각 끝에 캐나다를 다녀오기로 했다. 캐나다에 와서는 MBA를 하고 승진을 노리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이번에는 로스쿨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된 후에는 내 예상과 달리 한국에 다시 돌아갈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정착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캐나다에 머무른 셈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캐나다에서 가장 큰 지적재산권 로펌에서 변호사로 활동도 해 보고, 캐나다 변리사 자격도 따고, 대한민국 대사관 자문변호사도 했으니 15세도, 2세도 아닌 1세 변호사로서는 꽤 큰 호강을 한 셈이다.
참 먼 길을 돌아왔고, 이렇게 될 거였으면 내가 이것저것 시도했던 그 많은 노력들이 다 헛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다. 나는 이 문을 열심히 두드렸는데, 계속 옆 문이 열린 격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이 기회를 볼 안목을 기르게 했고, 기회를 볼 안목이 생기니 기회를 잡을 용기가 생긴 건 아닐까 싶다.
돌아보면, 회사에 소홀하지는 않았지만, 양다리 생활을 참 오래했다. 양다리의 어려운 점은 자원 부족이다. 하나를 하기에도 시간과 체력과 돈이 모자라는 때가 있으니, 양다리를 걸치려고 이걱 저것 계산해 보면 도저히 필요한 시간이, 체력이, 금전적 여유가 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긴 양다리 생활을 통해 익힌 진리가 하나 있다.
양다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일단 걸치려고 마음 먹으면, 걸쳐진다. 양다리를 걸치기 전에는 아무리 계산해도 나오지 않던 시간이, 체력이, 여유가, 일단 걸치면 짜낼 수 있고, 짜내다보면 어디선가 생겨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다리가 찢어져도 양다리를 응원한다. 양다리는, 애벌레가 통통한 애벌레가 아닌 나비가 되고, 도토리가 도토리 묵이 아닌 떡갈나무가 되게 하는, 유일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현실적인 묘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