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못하지만 북미에서 전문직이 하고 싶은 당신에게

영어를 잘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건 영어를 대하는 자세다

by 신광훈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취업이나 해외 이주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미국이나 캐나다 취업이나 이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많다. 그래서 종종 한국에서 내가 모르는 분들이 전화를 주신다. 캐나다의 지인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듣고 연락처를 받으신 것이다. 질문 내용의 대부분은 1세가 캐나다에서 변호사가 (혹은 변리사나 회계사 등 기타 전문직이) 되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는 내용이다.


나도 그런 자문이 절실했던 적이 있기에, 웬만하면 그런 전화는 거부하지 않는다.


관심사가 조금씩 다르니 질문도 여러가지이지만, 그 분들이 공통적으로 물어보시는 것은 "캐나다에 가서 변호사나 다른 전문직으로 정착하고 싶은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하는 것이다.


직종이 무엇이든 내 대답은 항상 똑 같다. 1번은 영어. 2번은 체력.


하지만, 영어가 중요하다는 것은 영어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사실 나도 오랫동안 그걸 몰랐다. 영어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LSAT 시험 준비를 할 때도 영어가 가장 큰 문제였지만, 로스쿨에서도 법률보다도 먼저 영어와 전쟁을 치러야 했다. 로스쿨에서는 교수님들이 입만 열면 언어는 변호사의 '날카로운 칼' 이라는 둥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둥 돌아가면서 변호사의 무기는 언어라고 강조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언변이 좋았다. 나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독일계 다국적 회사에서 근무를 했고, 영어를 쓰는 상사와 근무를 했으며, 영어로 강의나 교육도 많이 받았고, 10년이상 지속적으로 저녁에 영어 학원을 다녔으니, 로스쿨 수업도 그럭저럭 해 낼 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 영어로 로스쿨 수업을 버티기가 어렵겠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오리엔테이션 기간 1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가장 처음 나를 좌절 시켰던 것은 나의 영어 이름. 개강 첫 주는 오리엔테이션 주간으로 수업을 하지 않고 수강생들과 교수가 서로서로를 소개하고, 첫 학기의 수업개요와 교재를 설명했다. 한국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리엔테이션 기간이었다. 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던 경험으로 내 이름이 외국인이 발음하기에 어려운 이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미리 시간을 많이 들여서 영어 이름을 준비했다. 그리고 영어 이름으로 나를 소개하리라 계획했다.


여러가지 후보 중에서 직접 불러도 보고 주위 의견도 들어보고 해서 후보를 고르고,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이름 후보들 프리젠테이션까지 하고 고른 것이 알버트 Albert. 일단 아인슈타인의 이름이라는 것도 호감이 갔지만, 근무하던 독일 회사에서 Albert라는 이름을 쓰는 독일 친구들이 다 성격좋고 실력있는 친구들이라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알아듣기도 편하지 않은가 - 알버트.


하지만, 이름을 잘 못 지었다는 것을 곧 알았다.


첫 수업에서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나는 준비한데로 나를 ‘알버트 신’ 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다들 응? 이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다. 교수님은 다시 물어 보신다. 이름이 뭐라고? 그래서 잘 못들으셨구나 생각한 나는 목청을 높여 큰 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나는 알버트 신이야". 그런데 주위에서는 수군수군. 교수님은 3번째로 물어보신다. 이름을 다시 말해줄래? 아, 이렇게 되면 갑자기 자신이 없어진다. 나는 이번에느 조금 작은 소리로 알버트 신이라고 하는데 역시 교수님과 동료 학생들은 못 알아들은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한 글자씩 불러준다. A, L, B, E, R, T, 알버트. 그랬더니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알아들었다는 반응이 나오는데 대부분이 이거였다.


“오, 앨버-r트!”


그랬다. 내가 그 동안 독일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들어온 Albert는 캐나다에서 발음되는 Albert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알버트’라고 불러왔던 이름이 독일식 발음이고, 캐나다에서는 ‘앨버-r트’ 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캐나다에 오기 전에 영어 공부차 보던 드라마나 영어 학원 듣기 시간에 분명히 ‘앨버-r트’ 라는 발음을 들었겠건만, 나는 우리 회사에서 통용되는 '알버트' 발음만 생각했다.


첫 수업에서 그 사실을 알고나서 다른 수업에 적용을 해 보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한국인의 고질적인 병폐, r발음에서 무너지기도 여러 번이고, '앨버-r트' 는 내가 생각했던 이름이 아니라서 (비록 알파벳 철자는 같을 지언정) 그렇게 불리기 싫었다. 그래서 오리엔테이션 기간 1주일이 지난 후, 나는 그냥 나의 국어 이름 중 “Kwang” 한 글자만을 내 이름으로 쓰기로 했고, 그것이 지금도 나의 영어 이름이다.


그리고, 걱정을 했다 - 15년간 꾸준히 영어 학원을 다닌 나도 이럴진대, 아내는 어떨까. 더 힘들겠다 싶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몇 주 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캐나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다 보고 계산을 하고 나오는데 계산원이 영어로 인사를 한다. "우리 매장에 줘서 고마워, 좋은 주말 보내."


순간 내 머리는 복잡해졌다. 장황하게는 아니더라도 '어, 너도 좋은 주말 되기를 바래' 뭐 이 정도 말은 해야 될 것 같으니 머릿 속으로 열심히 문장을 만드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거다. 그래서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아내가 먼저 대답한다 - You too!


아, 이렇게 간단한 것을!


지나고 나서의 이야기지만 그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유 투" 이 간단한 한 마디가 입 밖으로 나오는 데에 나는 거의 1년이 걸렸으니. 누군가 좋은 말을 해 주면 '유 투' 이거면 되는데, 내 머리는 시키지 않아도 답변을 주어와 동사가 다 들어간 문장으로 완성하느라 바쁘게 돌아갔다. 그 버릇을 버리는데 1년이 걸린거다. 그런데, 한국에서 영어를 쓸 일이 별로 없던 아내가 냉큼 새로운 표현을 배워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집에 오면서 아내에게 물어 보았다 - '유 투'라는 표현은 언제부터 쓰게 된 건지 (표현은 알아도 그걸 말하기는 어려우니까),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지. 그랬더니 '유 투'라는 표현은 처음 장 보러가서 바로 익혔고, 영어 스트레스는 별로 없단다. 놀라웠다. 아니, 나보다 안 좋은 발음에, 나보다 떨어지는 문법과 어휘를 가지고, 비록 로스쿨 다니는 건 아니라고 해도, 캐나다에 처음 와서 어떻게 영어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가 있다는 걸까?


비결은 이거였다 - 그냥 아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입에서 나오는대로 말하기.


발음이고, 문법이고 상관하지 않고 말해도 결국 다 알아 듣더란다. 아니면 알아 들을 때까지 말하거나. 발음이나 표현이나 시제가 틀릴 때 느끼는 창피함? 체면? 그런 거 없다고 했다.


물론 전화로 핸드폰이나 인터넷에 대해, 혹은 전기 사용료 등으로, 외국인과 이야기를 해야 할 때는 답답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만나서 처리하는 일이면 영어 스트레스는 별로 없단다. 그러면서 Yoo too 처럼 편리하고 쉬운 말을 왜 못하냐고 오히려 나를 핀잔을 준다.


내 머릿 속 국어를 온전히 영어로 표현해 보려는 욕심이, 영어로 창피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오히려 영어를 못하게 하는 거였다. 그러니, 영어를 '잘 하는 것'보다 영어를 '무서워하지 않는 것'과 '틀려도 창피해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 자세면 영어는 결국 극복된다.


가끔 영어를 잘 못하는 1세 고객이 자꾸 상담시간에 영어로 말씀을 하셔서 국어로 말씀하셔도 다 알아듣는다고 말씀드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 분들 말씀으로는 불편해도 영어를 쓰려고 평생 노력했더니, 영어를 잘 못하는데도 자꾸 입으로 영어가 나온다고 하셨다.


사실 이건 만만한 경지가 아니다. 영어로 (틀린 영어일지언정) 생각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신 것이다. 영어로 잘 말하지는 못하지만, 영어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뻔뻔함인가. 강세가 틀려도, 전치사가 틀려도, 시제가 틀려도 1점이 깎이는 것이 아까웠던 공부법은 입 밖으로 틀린 영어를 말하기 꺼려하게 한다. 안 틀릴 수 있는 영어만 하다보니 항상 그 자리다. 오히려 강세나 문법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되는대로 말하다 보면 영어가 빨리 익숙해진다. 틀려봐야 영어가 늘고 내가 직접 말해 봐야 영어가 들린다.


주위에 1세로서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고위 공무원 등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보면 영어를 못하지는 않으셔도 그닥 잘하는 분들은 없다. 어쩔 수 없다. 1세 아닌가. 하지만 공통적으로 영어로 말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미국에 살면서 살 만 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의 가장 큰 차이는 소득 수준도, 교육 수준도 아니고, 영어를 불편해 하는지 아닌지라고 한다. 그러니 영어에 대한 태도는 해외 취업이나 해외 이주의 성공을 가르는 열쇠다.


물론 영어는 잘 할수록 좋다. 그런데, 영어는 틀리다보면 결국 잘 하게 된다. 그러니, 영어 틀리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을 준비만 되어 있다면 (그리고 체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일단 1차 관문은 통과한 것이다.


Welcome to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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