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법으로 배우는 다른 사고방식

사고 방식을 바꿔보고 싶다면 다른 법을 배워라

by 신광훈

캐나다 로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하면, 법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는데도 당황하게 되는 차이들이 있다. 공부하다보면 그런 법 체계의 차이가 사고방식의 차이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불문법 시스템인데, 어렴풋이 불문법이라는 게 모든 법이 종이에 씌여져 있지는 않고 법원의 판례도 법으로 인정되는 시스템이라는 건 한국에서도 배워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느낌이 매우 생소하다. 심지어는 헌법조차 모든 것이 문서화 되어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 한국에서만 살아온 내가 “아니, 헌법까지 판례에 기댄다는 것이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그래서 캐나다의 헌번 분야였는데, 내게 캐나다와 한국의 사고 방식 차이를 알려준 첫 사건은 형법 케이스였다.


아이스하키는 캐나다를 대표하는 운동이고, 또 캐나다는 아이스하키 강국이다. 그래서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캐나다에 아이스하키 연수를 오는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에 남녀노소를 가지리 않고 열광한다. 캐나다 대표팀이 참가하는 아이스하키와 월드컵 경기가 있다면 생각할 것도 없이 아이스하키 경기를 본다고 하는 것이 캐나다 사람들이다.


그런데, 관중들이 특히 열광하는 때는 선수간에 주먹다짐이 날 때다. 운동 경기 중에 폭력을 쓴다고? 하고 이상하게 생각한다면, 대단히 정상이다. 나도 스포츠 경기 중에 주먹다툼을 허용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미국도 아이스하키 경기에 주먹다짐은 금지한다고 했는데, 캐나다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주먹다짐을 하는 주위에 심판이 구경만 하고 있다가 주먹질이 잦아들만 하면 그제서야 제지하는 시늉을 한다.


대부분은 큰 부상없이 싸음이 끝나지만, 2004년에는 조금 큰 일이 생겼다. 선수 중 한 사람이 상대방 선수의 머리를 뒤에서 세게 쳐서 상대방 선수가 혼수상태로 쓰러졌는데, 결국 상대방 선수는 척추가 여러 군데 상하고, 뇌진탕에 빠졌으며, 신경과 안면을 많이 상하는 중상을 입은 것이다.


한국이라면 어떨까? 민사소송도 해야 하겠지만, 당연히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예를 들어 축구 경기 중에 어떤 선수가 경기와 관계없이 다른 선수를 발로 차서 중상을 입혔다면 폭력으로 보야야 하지 않을까?


경찰이 개입했다. 그런데, 아이스하키 협회가 나서서 말하기를 “이것은 협회 소관이니, 협외 내에서 알아서 하겠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요약하면 이런 입장이 된다) 라고 했다. 경찰이 끼지 말라는 것이다. 뭐지? 일개 운동 협회가 치외법권을 선포하는 건가? 말이 되나? 사건의 개요만 듣고 나는 당연히 협회의 주장은 캐나다와 같은 소위 선진국에서 통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사건을 놓고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놀랍게도 경찰이 개입해야 한다는 (다시 말하면 형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과 그렇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 거의 반반이었다. 학생들의 반 정도는 이 폭행을 범죄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 학생들의 말에 따르면 (그리고 캐나다 아이스하키 협회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아이스하키에는 싸움에 대한 암목적인 룰이 있다고 한다. 주먹다짐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고 싸움을 전담하는 선수들이 팀 마다 한 명씩 있어서 싸움은 그 선수들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며, 서로 합의하에 (야, 지금 싸우자, 이런 식으로) 싸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선수들이 골을 많이 넣더라도 싸움이 벌어지지 않는 아이스하키 경기는 관중들이 시시해하기 때문에 팀 차원에서도 싸움을 말리지 않으며, 선수들은 이런 분위기와 관행 때문에 싸움을 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한 사고를 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 사건은 뒤에서 폭행을 한 사건이라 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지만, 선수들에게 책임을 묻기 시작하면 아무도 싸우려하지 않을 것이고, 더 나아가 운동 경기의 운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많은 학생들이 아이크하키 협회에 맡겨야 한다, 왜냐하면 아이스하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아는 사람이나 조직이 결정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라는 쪽으로 그 학생들 (경찰의 개입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나는 아이스하키에 대해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아이스하키 협회에 왜 그런 권한을 부여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었으나 끼여들 틈이 없어 기회만 보고 있었는데, 교수님이 대신 질문을 해 주셨다. 아이스하키 협회는 경찰이 아닌데?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 동안 아이스하키 협회는 아이스하기 팬들이 보기에 충분한 자정 능력을 보였다, 돈 문제나 경기 운영 문제 등에서 팬들이 보기에 잘 관리하고 해결해 왔으며, 이번에도 경찰이 이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아이스하키 협회의 입장은 그저 밥그릇 지키기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아이스하키 협회는 과거 아이크하키 팀들과 선수들을 관리해 오면서 쌓은 실적을 바탕으로 이런 폭력 사태도 경찰보다 잘 처리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신뢰를 얻은 것이었고, 그 신뢰를 형법 적용에까지 미치는 중이었다.


아이스하키 협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중에 변호사로 개업을하고 보니, 변호사 협회의 간섭이 지나칠 정도로 심했다. 새로 개업한 사무실에는 첫 2년차에 꼭 감사가 2번 나오는데, 얼마나 세세하게 서류와 돈 흐름을 확인하고, 변호사 협회 규정 준수를 따지는지 국세청도 이렇게는 안 하겠다 (국세청 감사를 받은 변호사 말로는 실제로는 국세청이 더 심하다고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변호사 협회가 이렇게 하기 때문에 국세청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세무 감사를 실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러 협회들이 회원들에 대한 처벌과 보호 역할을 동시에 수행함으로서 형법의 시행을 일부 대행하는 셈이었다.


반면 협회의 일처리에 문제가 보이면 그 동안 쌓은 권한이 박탈되는 건 순식간이다. 사회주의 국가인 캐나다는 소명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 되면 권한을 회수하는 것이 매우 빠르고 한국보다는 용이하다.


어쨌든 국가가 가진 형법 적용의 권한까지 일개 협회에 위임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동기들을 보면서 아, 내가 캐나다 법을 이해할 수 있기는 할까... 하고 고민했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렇게 다른 법 체계를 배우는 것이 한국식으로만 길들여진 내 사고 방식을 바꾸는 지름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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