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식 대화법에서 살아남기

질문이라는 꼼수가 묘수가 되다

by 신광훈

북미 로스쿨에서는 소위 소크라테스식 대화법을 교습법으로 택하는 수업이 많다. 교수가 정답을 들고 수업을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 상이의 문답, 혹은 학생과 학생 사이의 토론을 통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이다.


하버드 로스쿨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진 이 방법은 그 효과가 이미 입증되었지만, 학생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것은 미리 예습을 충분히 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교수님이 기본적인 부분은 짚어 주지만, 그 날 논의할 판례나 기본 지식은 스스로 공부해야 수업에 참가할 수가 있다.


LSAT 준비를 하면서도 느낀 거지만, 내가 현지 학생들과 비교해서 가장 뒤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영어 읽기 속도와 영어 말하기였다. 그러니, 과제를 미리 읽는 것과 수업 시간에 대답을 하거나 토론을 하는 것이 정확하게 나의 약점이 되었다. 아마도 이건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1세, 그리고 모든 국내파의 문제일 거다. 게다가 현지인들과는 사고방식마저도 달라, 내 생각을 방어하려면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까지 설명을 해야하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수업 시간에 발표를 하기가 무서웠다. 사건에 대한 요약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미리 공부해 갈 수 있지만, 사건에 대한 생각이나 그 생각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말하라고 하면 영어도 부족하고 정리도 어려웠다. 게다가, 내 생각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이해할 수 없는 반박을 펼쳐대는, 그리고 그런 반박에 공감을 표하는 동기들을 보면서 점점 수업이 부담으로 다가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에 한국인 특유의 영어 말하기 방식 - 머리에서 완전한 문장을 만든 다음에야 입 밖으로 내 뱉는 방식 - 을 버리지 못한 때라, 내가 머리 속으로 문장을 완성했을 즈음에는 기다리다 지친 교수님과 동기들이 벌써 다른 주제를 토론하고 있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발표를 회피해서는 좋은 성적을 받기가 어려운 과목이 많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짜내고 짜내어 생각해 낸 방법이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질문은 읽을 거리를 다 읽지 않고 큰 흐름만 알아도 준비할 수 있고, 질문을 하면 굳이 답을 내가 말할 필요가 없으니 반박에 대한 고민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100명의 수강생 중에 교수님 눈에 띄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한 학기 내내 수업시간에 2-4번 정도 질문을 꾸준히 하면 교수가 기억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과제물을 꼼꼼히 읽는 대신 수업마다 질문만 10개 정도씩을 준비했다. 내가 질문하려고 하는 주제가 수업에 논의가 될 지 안될 지도 모르고 막상 해당 주제가 나오더라도 내가 생각을 하는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한참 흘러가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이것 저것 10개 정도는 준비를 해야 2-4 정도 타이밍 맞게 써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달 좀 넘게 했더니 동기들이 나를 조금 덜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조금 친해지고 나면 꼭 물어보는 질문이 “너 LSAT 몇 점이야?” 였다. 이렇게 영어 구사가 서툰 녀석이 어떻게 LSAT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거였다. 대놓고는 아니지만, 영어 때문에 조금 막 대하는 느낌은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내 질문이 본인에게 주어지는 것을 조금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지적재산권의 기초에 대한 시간에 페이스북과 관련한 논의가 있었는데, 어떤 말 많은 동기 하나가 본인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수가 왜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privacy 문제도 있고 자신이 올린 글과 사진에 대한 소유권이 궁극적으로 자신이 아니라 페이스북에 있다는 것을 받아 들일 수 없다며, 캐나다에서 privacy와 창작물에 대한 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주저리주저리 말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혹시 페이스북에서 $100주면 계정 만들고 글 올릴래? 그 친구가 대답했다. 아니. 그럼, $1,000주면? 아니 그럼 $10,000 주면? 그 친구가 대답을 망설이다가 "네가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는 알겠는데..."라고 시작을 하기에 내가 바로 말을 끊고 다시 물었다. 백만불을 주면? 그 친구도 다른 친구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수업시간이 끝난 후에 교수가 내게 말했다. "내가 할 일을 네가 하네."


그 정도면 내 입장에서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답변을 할 때에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칭찬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 질문만 하고 칭찬을 받았다.


질문을 많이 하는 건 지금 생각해도 좋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교수가 내게 질문하는 빈도가 확 줄어들어 영어로 답변을 해야 하는 부담이 거의 사라졌고, 수업 과제를 다 읽지 않아도 내가 준비한 질문을 할 시기만 놓치지 않고 잡으면 되기 때문에 수업에 대한 부담이 적어진데다가, 무엇보다도 영어가 서툴다는 이유 하나로 무시하는 분위기가 없어졌다.


요즘도 나는 유학가는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면 학과를 막론하고 이 이야기를 해 준다 - 영어가 부담스러울 때는 질문만 하라고. 그럼 중간은 간다고 (물론 질문이 좋아야 하지만 말이다). 로스쿨이든, MBA 든, 식물병리학이든, 이 전략은 실패한 적이 없다.


나는 운이 좋아서 꼼수로 생각해낸 질문하기가 묘수가 되었더랬다.


하지만, 꼼수라도 부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절박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 막힌다. 역시 절박함은 길을 만드는 지름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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