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으니 망정이지
내가 캐나다 로스쿨을 준비하던 때에는 캐나다에서 변호사가 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내 주위에도 한국에서 미국으로 로스쿨 유학을 간 사람은 있어도 캐나다 로스쿨을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마 지금도 북미 로스쿨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 미국을 생각할 것이다.
요즘 같으면 대부분의 정보는 웹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을 텐데, 내가 로스쿨을 준비할 때는 그런 기반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캐나다 내에서도 그런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그런 경우에는 미국 로스쿨에 준해서 그저 추측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아주 싫어하지만, 실제로 미국의 사례가 잘 들어 맞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처럼 캐나다도 로스쿨은 3년 과정이었고, LSAT 을 요구하는 것도 똑 같았으며, 한국의 성적을 북미식으로 변환해 주는 기관도 같은 기관이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미국처럼 캐나다에서도 3년의 로스쿨 과정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시험 (bar)을 통과하면 캐나다에서 변호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캐나다 로스쿨에 입학해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캐나다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더라도, 10개월 간의 연수를 거치지 않으면 변호사 자격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연수 자리 구하기가 로스쿨 입학보다 어려워서, 로스쿨을 졸업하고도 변호사가 못 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라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캐나다는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더라도, 3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변호사 밑에서 10개월이상 실무 연수를 받지 않으면 변호사 자격증을 주지 않는다. 변호사 시험만 통과하면 변호사가 될 수 있는 미국 변호사 자격증과는 다른 과정이었고, 미국과 달리 한국의 사법 연수원 비슷한 개념을 채용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로스쿨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연수 자리 구하기가 어려워서 Osgoode Hall Law School처럼 이름 있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또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고도, 연수 자리를 구하지 못해 변호사가 되지 못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딱 3년으로 짜 놓고 시작한 일정이었다. 여기에 10개월이 더해진다는 건, 1년 더 캐나다에 체류해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시간은 계산에 없던 것이라 빼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연수 자리를 못 구하면 변호사 자격 자체가 안 나온다는 거다. 그런 말은 아무 데에도 없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각 로스쿨의 정보가 아니라 온타리오 변호사 협회 정보를 검색하고 어떤 과정을 거쳐야 변호사가 되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거기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어쨌거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변호사 자격을 딸 수 없다면 한국에 돌아갈 때 로스쿨 졸업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애당초 10개월 연수라는 난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로스쿨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일단 내가 가진 시간보다 10개월씩이나 더 소요되는 데다가, 캐나다 현지인들도 구하기 힘들다는 연수 자리를 내가 구할 확률이 낮지 않은가. 그렇게까지 모험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어쨌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나는 스스로를 무모했다고 오랫동안 나무랐다.
그런데 시작을 하고 보니, 어찌어찌 여건도 맞춰지고 연수 자리도 구해져서, 비록 한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캐나다에서 가장 큰 지적재산권 로펌에 취직도 하고 지금은 캐나다에서 내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렇게라도 시작한 것이 다행이다 싶다.
몰랐으니 망정이지 알았다면 오히려 큰일났을 뻔 했다.. 하는 생각도 든다
다 알았으면 시작도 하지않고 포기했을 일이다. 잘 모르니 시작을 하게 되었고, 시작을 하니 끝을 보게 되었다. 모르는 게 약이된 경우 아니겠나.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내가 새로운 시도를 많이 못 했던 건, 너무 정보가 많고, 그 길의 어려움을 너무 잘 알아서였다.
나는 무모한 것이었을까. 준비는 완벽한 것이 좋다지만,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에는 완벽함보다는 대담함이 더 좋은 가치가 아닐까, 하고 지금은 생각한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시작한다면 무모한 것이겠지만, 완벽한 준비를 바라는 것도 지나친 조심성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준비에 대담함이 더해지면, 무모함보다 나은 것은 물론이고, 완벽함보다도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아도 시도해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의 근거다.
무모함과 완벽함 사이에서 대담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