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버 샷에 취하지도 말고 기대지도 말자
로스쿨에 입학해서도, 변호사가 되고 나서도, 길에 대한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로스쿨에서 공부하다보면 잘난 놈들이 있다. 말빨 좋고, 머리도 좋고, 성품도 좋고, 성적도 좋아 어느 로펌에서든 탐을 낼 것 같고, 졸업만 하면 연수생 자리가 수 십개 씩 제안이 오고, 연수만 끝내면 쟁쟁한 로펌들에게서 쏟아지는 채용 제안을 받을 것 같은 그런 친구들이 말이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로스쿨은 최종 성적 1, 2, 3위에게 졸업식 때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의 상을 준다. 내 첫 로펌의 입사 동기 중 한 명도 Queens University Law School 동메달 수여자였다. 그런 친구들은 당연히 본인들이 원하는 곳에 가기가 쉽다. 대부분은 대법원 판사실 등 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거나 월급 많이 주는 로펌에서 연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원하는 곳에 가기 쉽다고 해서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로펌은 이미 1학년 때부터 로스쿨 학생들을 2-3배수로 선발해 놓고, 그 안에서 연수생을 뽑기 때문에 졸업 당시에 아무리 좋은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갑자기 그 pool 안에 끼어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졸업하면서 갈 수 있는 로펌은 대부분 1개 뿐이고, 드물지만 잘난 학생이라 선택지가 있는 경우도 2-3개가 고작이다.
연수가 끝나면 더더욱 그렇다. 연수생 시절에 담당하던 분야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고, 대부분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어 가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캐나다는 연수 기간에도 한 두가지의 법을 집중해서 배우는 시스템이고, 한국의 사법 연수원처럼 다양한 법을 익히는 시스템이 아니다보니, 첫 선택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렇게 처음 정해진 분야에서 벗어나려면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일단 바닥부터 다시 시작을 해야 한다.
한인 변호사 중 한 명은 대형 로펌의 증권법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다. 명망있는 로펌에 보수도 후한 분야였다. 하지만, 몇 년간 증권법을 다루고 나서 이 변호사는 증권법이 너무 메마른 분야이고 사람들과 동떨어진 분야라고 생각했다. 서류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과 부딪혀가며 일을 처리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이 변호사는 그래서 생각 끝에 형법으로 분야를 바꾸기로 했다.
형법이야 로스쿨에서 당연히 배우는 것이지만, 실전 경험은 전무한 상황.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형 로펌을 그만 둔 후, 1년간 형법 변호사 밑에 들어가 무급으로 다시 일을 배우고 나서 형법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렇게 형법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또 너무 험한 일만 보게 되어, 이번에는 부동산법과 상법을 하는 변호사를 영입하고 본인도 부동산법과 상법 분야로 다시 한 번 전문 분야를 바꾸었다. 그렇게 몇 년을 일하다가 이번에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열정이 사라져서 사무실을 같이 일하던 변호사에게 넘기고 본인은 신학 대학에 진학해, 지금은 목사님으로 활동 중이다. 어찌보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대형 로펌의 증권법 변호사에서 오히려 낮은 지위로 내려 앉은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은 대 만족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선택은 항상 이보 전진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은 채 일보 후퇴를 먼저 요구한다. 성공할지 알 수 없는 길에 지난 경력을 걸라고 요구하니 선뜻 걸음을 내 딛기가 어렵다. 어렵다기 보다는 사실 두렵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이 나 혼자가 아니고 가정이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두렵다고 해서 첫 번째 시도에 집착하면 두 번째 기회가 없다.
미국 PGA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져 대회에서 우승하고, 통산 8승을 거두어 한국 골프계의 대부로 불린다는 최경주 선수는 이렇게 말한다 - 드라이버를 잘 못 쳐도 두 번째 샷으로 회복할 수 있고, OB 한 번에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골프를 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또 공감할 말이지만, 실제로 골프를 치다보면 드라이버 샷에 목숨을 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드라이버를 잘 못치면 두 번째 샷을, 퍼팅을 잘 하려는 생각을 하기 전에 게임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드라이버 샷에 목숨걸면 두 번째 샷을 잘 치기 어렵다. 어제 처남이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모두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다 백수고, 오히려 공부 못하던 친구들이 지금도 사업체 운영하면서 잘 나간다고. 어쩌면 공부 잘하던 친구들은 드라이버 샷에 취해서 두 번째 샷을 날리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공부 못하던 친구들은 두 번째, 세 번째 샷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서 계속 다음 샷을 쳐야 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다니던 로펌에서 나를 담당했던 파트너 변호사는 지적재산권 분야 캐나다 변호사 중에서 매년 top 10에 뽑혀 기사가 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분은 알버타 주에서 로스쿨을 졸업한 후, 취업이 어려웠고, 취업 후에도 평가가 좋지 않다 두 번이나 해고를 당했었다. 하지만, 온타리오로 옮겨와서 마침내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까지 올랐다.
로스쿨 입학에서든, 로스쿨 학점에서든, 로펌에서든, 실패하는 경험은 대부분 피할 수 없다. 그럼 두 번째 샷을 날려야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샷은 늘 두렵다. 두 번째 샷을 날리기가 두렵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두 번째 기회가 항상 더 좋은 기회다.
왜냐고? 일단은 더 앞으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샷을 날려보면, 세 번째 샷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치다보면 결국 홀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