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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21. 2022

타인의 진심이 나의 절망이 되지 않도록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방법을 모른다

내가 캐나다 오타와에 있는 로펌에서 근무하던 때, 나와 같은 교회를 다니던, 원자력 관련 정부기관 연구소에서 일하시는 박사님 한 분이 연락을 주셨다. 결혼하고 오타와 대학교 로스쿨을 다니는 한국인 아주머니가 계신데, 한 번 진로 상담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기꺼이 승락을 하고 교회에서 만남을 가졌다.  


그 아주머니께서는 결혼 후에 결심한 바가 있어서 남편과 오랜 상의 끝에 로스쿨을 왔다고 했다.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서 영어는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쉽게 적응할 수 없는 로스쿨 1학년, 2학년을 그럭저럭 버텨내고 이제 마지막 학년이 되었는데, 졸업 후 진로가 보이지 않아 고민 중이셨다고 했다. 그런데 때마침 한국 대사관에서 한인 전문직 종사자들과 학생들을 연결시켜서 자문을 받게하는 일종의 job fair 행사를 열었는데, 그 아주머니께서도 거기에 참가해서 한 여성 한인 변호사와 상담을 하셨다.


그 여성 한인 변호사는 규모가 꽤 큰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로 일하는 분이었는데, 그 분께서 이 아주머니와 상담을 하고서 말하기를 영어 실력이나 이력서 내용을 보았을 때 졸업 후 연수생 자리를 구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고, 운 좋게 연수생 자리를 구해서 변호사 자격을 따더라도, 변호사로 취업할 기회를 잡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길을 찾아보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변호사 자격 하나만 보고 남편과도 떨어져서 3년을 버텼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너무 막막하다고 하셨다. 게다가 그 여자 변호사분이 건성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인으로서, 진심으로 걱정해주면서 하는 말이라 더 절망감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랬을거다. 막막하셨을 거다. 나도 안다. 아마도 나를 소개해 주신 박사님께서도 내가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하고 뭔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셨던 듯 하다. 


내가 로스쿨 1학년 때 한인 사회에서 일하시는 유명한 변호사께 진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호사 자격 뿐만아니라 대형 로펌에서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한인 사회 내에서는 큰 규모의 로펌을 운영하시던 그 분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하셨다 - 대형 로펌에서 요구하는 영어나 법률 지식의 기준은 1세가 맞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며, 1세가 대형 로펌에 취직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흡사하니 다른 길을 생각해 보라고. 하지만, 그냥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캐나다에서 가장 큰 지적재산권 로펌에서 지적재산권 변호사로 일을 시작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내 경험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나보다 10년이나 빨리 시작했으니 절대로 늦은 것이 아니며, 시간의 문제이니 결국은 변호사로 역할을 하게 되실 거라고도 말씀드렸다.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졸업 후에 택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길을 설명드리고, 변호사로 할 수 있는 일이 캐나다에는 많으니 변호사 되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라고, 졸업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께서는 펑펑 울기 시작하셨다 (교회 안이라서 좀 당황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남편에게도 말을 못하고 속앓이만 하고 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고, 길이 있다는 말에 너무 안도가 된다고 하셨다. 


그 아주머니는 그 후 내가 로펌을 나와 독립을 하게 되면서 우리 로펌에서 연수생으로 10개월을 마치고 캐나다 변호사가 되셨고, 지금은 독립하셔서 토론토 지역 한인사회에서 잘 알려진 변호사가 되셨다. 


모든 조언은 선의라는 옷을 입는다. 듣는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함이니 거짓이 아닌 한 악의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의라는 옷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효용성이다. 그래서 목표를 정하기 위한 조언과 목표를 정한 후의 조언을 구별해야 한다. 포기를 권하는 조언은, 진심이고 당연히 선의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목표가 정해지면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목표를 정한 후의 조언은 방향을 구하지 말고 방법을 구해야 한다.


목표가 세워진 후에 구하는 조언은 방법에 대한 도움말이어야 하지 방향에 대한 길잡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나와 비슷한 길을 걸어간 사람에게 조언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흔히 우리는 꽃길의 끝에 서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한다. 꽃길의 끝은 비포장도로의 끝보다 보통 더 크고 화려하다. 


그러나, 꽃길만 걸어본 사람들은 비포장도로도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꽃길만 걸어온 사람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방법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이라면 이미 꽃길과는 거리가 먼 길이 예정되어 있다. 비포장도로를 한 번은 거쳐야 한다. 


그걸 알고 있다면, 비포장도로로 달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조언은 꽃길을 걷는 사람에게 구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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