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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04. 2023

무용한 계획의 유용성

오늘을 24시간이 아니라 24년으로 만드는 방법

요즘 한국의 웹툰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한다. 나름 자부심도 생기는 일이다. 한국의 웹툰이 북미에 알려진 지는 꽤 된 것으로 아는데, 이제는 대학도 졸업한 내 아들, 딸이 초등학교 학생이던 시절, 한국 웹툰 중 하나였던 노블리스라는 웹툰은 한국에서 포스팅이 되자마자 영어로 번역이 되어 바로 다음 날 아침 캐나다 학교에 등교하면 영문판으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보다고 캐나다 현지 학생들이 더 난리였다고 해서 놀랐었고, 나도 그렇게 웹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고정적으로 보고 있는 웹툰만 하루에 5편 정도다.


그런데, 요즘 인기있는 웹툰들을 보면 미래를 알고 진행하는 캐릭터가 주인공인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내가 읽은 소설이 현실이 되어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내가 즐기던 게임 내용이 현실이 되어 주역이 되고, 내가 과거로 회귀하여 미래를 아는 상태에서 영웅이 되는 그런 내용들이다. 이번에 인기리에 종영된 '부잣집 막내아들'이라는 웹툰 기반의 드라마도 그런 류다.


현실에서 느껴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미래를 알고 승리하고 성공하는 주인공의 영웅담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미래를 모른다는 건 참 무서운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미래가 어느 정도 예측이 되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더 두려운 일이다. 


그러니,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려는 노력이 끊이지 않는다. 너무 뻔한 얘기지만,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 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계획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2022년을 마무리하고 2023년 시작하는 이 연말연시는, 아마도 가장 많은 계획들이 평가받고, 수정되고, 또 세워지는 시기지만, 달성된 계획이 얼마나 되나만 따지면 사실 계획이 늘 유용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계획은 유용성이 떨어지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계획은 내일을 위해 세우는 것이지만, 오늘까지 알고 있는 사실만 가지고 세워야 하기 때문에 완전할 수 없다. 알지 못하는 재료들을 가지고 세운 계획이 완전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모르는 사실이 있는 만큼 실패할 확률도 따라다니는 것이 계획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계획이 없으면 '오늘'은 바로 '내일' 소멸되기 때문이다. 계획이라는 도구는 오늘이 내일 소멸되지 않고 내일과, 그 다음날과 이어지게 해 주는 것이 그 진정한 효과이 있다. 그래서 오늘이 그저 오늘로 사라지지 않고, 내일로, 다음 달로, 내년으로, 10년 뒤로, 100년 뒤로 연장되게 해 준다는 것에 계획의 의미가 있다. 계획을 가지고 맞는 내일은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오늘의 연장이다. 


계획이 틀어진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생기기 때문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계획이 더 좋은 계획이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완전히 예측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계획을 세우고 움직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00%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라면,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한계를 정해놓고 계획이라고 착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험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한 계획은 불완전하여 수정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목적이다. 목적은 계획의 수정을 가능하게 해 준다. 


목적이 있는 계획이라야 변화에 대응할 수 있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계획은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이 된다.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의 계획 수정은 마치 과녁을 보고 화살을 쏘는 것이 아니라, 화살이 맞은 자리에 과녁을 그리는 것과 다름이 없어서, 비록 과녁을 잘 맞춘 것 처럼 보이는 결과는 있지만, 나의 활 솜씨는 나아지지 않는다. 활솜씨가 늘지 않으니, 다시 도전해도 과녁을 맞출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명예의 전당에 올랐던 야구인 브랜치 리키는 “행운은 설계의 흔적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운이 좋아 보이는 사건은 사실 대부분 과거의 어떤 행동에 기인하고, 또 그 과거의 그 행동 대부분은 아무 생각없이 한 행동보다는 계획한 행동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목적이 있는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유용하다. 나의 어제를 오늘로, 나의 오늘을 내일로 연장시켰다는 것 만으로도 유용하고, 이번에는 찾아오지 않은 미래의 내 행운을 설계해 나간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그러니,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만을 유용하다고 볼 일이 아니다. 모두가 계획을 평가하고 세우는 연말연시, 나도 작년처럼, 10년전처럼 또 계획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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