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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May 13. 2024

아픔도 구슬이다

보배가 되는 아픔, 변명으로 남는 아픔

이민 생활을 오래 하신 한국 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다들 아픔이 있다. 드라마 대사처럼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같은 아픔이든 심장이 뜯겨져 나가는 아픔이든, 종류가 다르고 정도가 다를 지는 모르지만, 아픔이 있다. 


물론 한국에 계속 살았다고 하더라도 아픔은 있었겠으나, 그래도 한국에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모두 주유가 될 수 있는 곳 아닌가. 무엇을 하든 단지 피부색 하나로 'visual minority'로 낙인찍히는 곳에서 더 흔하게 아픈 이야기가 들리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인 최초로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가 된 한동일 교수께서는 라틴어로 된 인생 문장 중 하나로 이 말을 꼽는다.  


Vexatio storia fiat (아픔이 스토리가 되도록)


듣는 순간 참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다면, 내가 아픔이 없어서는 아닐 것이다.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으니, 나도 아프고 너도 아프다. 그러니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픔으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몰라서 그럴 것이다. 


나는 고객이 처한 상황을 들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아픔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은 예를 많이 알고 있다. 


팬데믹으로 술집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영업 실적이 나빠지자 평소 솜씨를 발휘해서 도시락 배달을 시작해 버티다가 나중에는 도시락 전문점 프랜차이즈 사업가가 된 분도 계시고, 알버타 주에서 증권법, 기업법, 부동산법 등으로 분야를 바꿔가면서도 3번이나 로펌에서 해고된 변호사가 온타리오 주로 옮겨와서 마침내 캐나다를 대표하는 변호사가 된 사람도 있다. 


모두 아픔으로 스토리를 만든 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 비결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이는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는 그 집요함에 그 비결이 있다하고,  어떤 이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음에 그 비결이 있다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아픔을 이유로 삼는 일을, 아픔을 변명으로 삼는 그 일을 그만두는 순간, 아픔은 스토리가 되기 시작한다.  


나에게는 친한 지인이 있다. 이 분에겐 아픈 과거가 있다. 그런데, 이 분은 가까운 사람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해 준다. 문제가 생기면 아픔을 이야기 해 준다. 예외없이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공감하고, 동정하기도 하며, 힘내라고 격려해 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 분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이 분이 자신의 아픔을 계속 이유로 대고 변명거리로 삼는 한, 그 분은 계속 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을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어떻게 아느냐 하면.... 사실 내가 꽤 오랫동안 그렇게 아픔 팔이를 하면서 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픔을 이유로 삼고, 변명거리로 삼는  아픔 팔이는 요즘 유행하는 성공 팔이를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자신의 경험이라 하면서 성공으로 가는 쉬운 길을 보여 줄 테니 따라오라 하고, 자신의 채널을 구독하라 하고 자신의 강의, 저서를 사 보고 따라하면 성공한다 유혹하지만 실제로는 거짓이거나 근거없는 다른 사람의 기대심리를 자극하는 내용일 때, 우리는 그것을 성공 팔이라 부른다. 


성공 팔이가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근간에는 아픔을 변명거리로 남겨 놓은 채로 성취를 이루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아픔 팔이를 하다보면 성공 팔이들이 부는 피리 소리에 홀려 쥐들처럼 따라가다 호수에 빠진다.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아니 적어도 나의 아픔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아픔을 변명거리로 삼는 건 '지금까지'로 족하다. 나의 아픔이 내 실패의 이유였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으로 아픔의 역할은 끝났다.  


더 이상 그 아픔을 변명 거리로 늘어놓지 않을 수 있어야 비로소 아픔은 스토리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스토리가 된 아픔은 구슬이 된다. 구슬이 된 아픔은 꿰어져 보배가 되기도 한다.  


아픔으로 보배를 만들 것인지 아픔을 계속 변명거리로 쓸 것인지는 칼자루를 쥔 사람 맘이다. 지금 손에 칼자루를 쥐었는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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