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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5. 2024

어떤 길이 지름길일까

굽이치는 길이 지름길이다.

예전 미국 정부의 고위 관리였던 분이 한 대학의 총장이었던 때의 이야기다. 대학에 건물을 새로 짓고 건물에 닿는 길을 포장해야 하는데, 이 대학 총장이 말하기를 "건물 주변을 다 잔디를 깔고 길은 내지 말라"고 했다.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입구로 통하는 길이 깔리지 않은, 잔디밭으로만 둘러쌓인 대학 건물이 세워졌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나니, 학생들이 주로 다니는 길에 난 잔디는 다 죽어 있었고, 자연스럽게 건물 입구로 통하는 몇 갈래의 좁은 길이 잔디밭 위에 생기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 총장은 말했다. "길이 난 곳을 따라 길을 깔아 주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무릎을 쳤다. 대학을 다니면서 잔디밭으로 난 오솔길을 수 없이 보았던 터다.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참 현명한 선택이다. 


그런데, 그렇게 깔린 길의 모습과 방향은 처음 도면으로 만들었던 길과는 완전히 달랐다고 한다. 


도면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가장 좋아 보였던 그 길이, 사실 건물을 사용하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효율적이지 않은 길, 돌아가는 길이었던 것이다. 아마 원안대로 길을 만들었다만, 더 보기 좋은 길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지름길은 아니었을 듯 하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는 지금 선자리에서는 어떤 길이 나를 목적지에 빠르게 데려다 줄 지름길인지 알지 못한다. 아니, 어느 길을 따라가야 늦게라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지 알 방법이 별로 없다.  


인도의 성자라 불리는 선다싱과 관련해서 이런 일화가 있다. 선다싱이 동료와 함께 몹시 추운 산길을 걸어가던 중에 벼랑 아래쪽에서 신음 소리를 들었다. 선다싱은 사람이 떨어진 것 같으니 내려가서 돕자고 했고, 동료는 여기서 지체하면 모두 죽게 되니 우리라도 빨리 몸 피할 곳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고, 선다싱은 부상당한 사람을 절벽 아래에서부터 업고 간신히 산을 올라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몇 번을 쓰러지면서 가다보니 멀리서 불빛이 보였고, 이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무언가에 걸려 넘어졌다. 그런데, 선다싱을 넘어뜨린 것은 먼저 길을 떠난 동료였다. 


선다싱과 부상자는 서로의 체온으로, 그리고, 힘을 쓰면서 생긴 열기로 추위를 버텼지만, 혼자 걷던 그 동료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그 동료는 빨리 가는 것이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부상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지름길이었다. 아마도 선다싱은 이 경험으로 인해 성자라 불리는 위치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더 빨리 도착했을 뿐만 아니라, 더 멀리 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쩌면 지름길은 그저 빠른 길이 아니라, 더 멀리 가게도 해 주는 길이다.


강이 굽이쳐서 길게 돌아 가는 건, 직진하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길게 돌아가는 길이 지름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멀리 돌면서 얻는 양분이, 이 물줄기를 더 길게 뻗게 할 밑천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굽이 치지 않으면 바다에 다다를 힘을 얻을 수 없다는 지혜를 강물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물은 굽이친다. 내 삶이 굽이칠 때, 그 길이 지름길이고, 그 때가 바다에 다다를 힘을 얻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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