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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10. 2024

[휴양지에서의 단상 7] 새해, 작심삼일 극복하기

상상과 효용

칸쿤 리조트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한 백인이 다른 백인 커플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 온 지 하루나 이틀 밖에 안 되었나봐요"

"예, 저희는 어제 왔어요"

"어쩐지. 얼굴이 빨갛지 않더라니요 (타지 않았다는 뜻)"


대화로 미루어 짐작컨데, 백인들은 휴양지에 와서는 햇볕 아래에서 태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사실 캐나다에서도 그런 기조가 있었다. 얼굴이 하얀 사람들은 밤낮없이 실내에서 일만 해야 하는 사람이고, 얼굴이 거무스름하고 햇볕에 그을린 기색이 있어야 골프도 치고 휴양도 다닐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 방식이다. 자로고 얼굴을 하얗고 뽀얀 것이 최고이고, 그래서 골프를 치러 나가면서도 얼굴에 덕지덕지 썬크림을 바르거나, 요즘 유행한다는 야외용 마스크로 눈만 빼고는 다 가리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이니. 


사실 나도 이번에는 좀 광합성을 하면서 햇볕에 탄 흔 적을 남기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내가 허락하지 않아 바닷물에 들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햇볕을 피해 다녀야 했고, 바닷가 Sun Bed 에 자리를 맡을 때에도 햍볕이 잘 드는 곳이 아니라 그늘이 잘 지는 곳을 골라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대학에서 미시 경제학을 수강하던 시절, 교수님 "효용"이라는 경제학 개념 하나를 설명하시면서 이런 예를 말씀해 주신 것이 생각났다.  


미국 유학 중에 지도 교수님과 함께 한국에서 열리는 학회에 발표차 참석할 기회가 있었단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열심히 자료를 뒤져 보면서 발표 준비를 하기도 하고, 경제학 논문도 읽고, 하다 보니, 주변에 있는 승객들이 잠을 자고 있더라는 것이다. 미국에 갈 때에도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라 지도 교수님께 여쭤 보셨다고.


"교수님, 왜 저 분들은 이 아까운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일까요?"


참고로 그 때에는 아직 비행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던 때였다. 비행기에서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생긴 사치다. 어쨌든, 함께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교수님께서 이렇게 매우 경제학적인 답변을 하셨단다. 


" 그게 저 사람들에게는 저 효용이 높은 일이거든"


효용은 어떤 것을 소비할 때 느끼는 만족감 정도로 해석된다. 효용은 나의 가치를 반영한다. 마음 가는 곳에 몸 간다는 말이 보여주듯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본인의 효용이 높은 곳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가 어디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효용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의 가치를 알게 되고, 그 사람의 필요를 알게 된다. 


칸쿤의 휴양지에서도 바닷가 Sun Bed에 자리를 잡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영장 Sun Bed에 자리를 잡는 사람이 있다. 바닷가 Sun Bed에서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술은 마실 수 있다) 음식을 가져다 주지 않기에 그렇다. 수영장 물이 바닷물보다 더 따뜻해서 그렇다. 수영장에서는 수영을 할 수 있지만, 바닷물에서는 수영하기 어렵기에 또 그렇다. 수영장 근처에서는 피자든, 타코든, 햄버거든, 술과 더불어 무제한으로 시켜 먹을 수 있고, 하루 종일 춥지 않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고, 잔잔한 물에서 수영도 실컷 할 수 있다. 


그래서 그가 누운 자리를 보면 그의 효용을 알 수 있다. 


잠을 자는 사람은 피곤한 사람이고, 책을 읽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며, 햇볕에 있는 사람은 태우고 싶어하는 사람이고, 그늘에 있는 사람은 태우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사람은 평안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고, 수영장에 자리잡은 사람은 먹고 놀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효용과 효용이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취하고 싶은 마음과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마음, 고기만 먹고 싶은 마음과 건강해 지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바람직한 것의 효용이 그렇지 않은 것의 효용보다 크지는 않다. 사실 그 반대다. 대부분 머리로 생가하는 바람직한 것의 효용은 지금 내 몸이 원하는 것의 효용보다 작다. 그래서, 지금 내게 효용이 떨어지는 길을 가야, 나중에 큰 효용이 있는 자리에 다다를 수 있다.


당장의 효용에 반하여 움직이려면 내게 만족감이 떨어지는 행동을 해야 한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지속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바람직한 것에서 효용을 누리기 위해 매년 새해 계획을 세우지만, 그 계획의 효용이 당장의 몸의 효용에 반하면 의지로만 그 일을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작심삼일이 된다. 당연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그 때 필요한 것이 상상이다. 내가 상상하는, 당장의 큰 효용에 반하는 길, 그 끝에 있는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 결과가 주는 효용을 마치 지금 일처럼 미리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 상상으로 지금의 나를 속일 수 있어야, 비로서 작심삼일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누운 자리를 보면 효용이 보인다. 어디에 누울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면... 상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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