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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08. 2024

내 MBTI 를 숨겨야 하는 이유

패턴이 있으면 들키고, 들키면 예측당하고, 예측당하면 진다.

나비와 나방은 다르다. 굳이 곤충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웬만하면 딱 보고 이게 나비인지 나방인지 구별할 수 있다.  


나도 당연히 나방과 나비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둘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왜 이건 나비라고 하고 내 저건 나방이라고 하냐"고,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그래서 설명을 해 주려고 했는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음, 이건 나비인데, 왜 나비지... 저게 나방인건 확실한데, 왜 나방이지?


다행히 주위에 곤충을 전공한 선배가 있어서 물어보니, 즉석에서 3가지 판단 기준을 알려준다. 그 중 가장 쉬운 기준 - 나비는 날개를 접고 앉고 나방은 날개를 펴고 앉는다 (물론 예외는 있단다).


듣고 보니 아하!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도 날개를 펴고 앉았는지, 접고 앉았는지를 보고 나비와 나방을 구별하는 것 같았다. 구별은 할 수 있었는데, 내가 왜 이건 나비라고, 저건 나방이라고 판단하는지는 나도 몰랐다. 분명 패턴이 있기는 있었는데, 눈으로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머리로 알지 못해서 그게 뭔지 설명은 할 수 없었다. 


요즘 인공지능에 관한 글을 접하다보니, 나비와 나방보다 더 쉬워 보이는 고양이와 개의 구분을 인공지능에게 가르치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닌 듯 하다. 인공지능을 가르치기 위해 개와 고양이를 구별하는 논리를 나보고 만들라고 하면... 사실 만들 자신은 없다. 개와 고양이는 100% 구별할 자신이 있지만, 외관으로 보고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설명할 자신은 없다. 구별하는 패턴이 분명히 있는데, 뭔지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공지능은 충분한 데이터를 주면, 그래서 많은 데이터가 필요하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논리를 자기가 만들어낸다. 이제는 따로 인간이 논리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패턴을 찾아낸다. 그래서 수 없이 많은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보고, 스스로 패턴을 찾은 후, 스스로 개와 고양이를 구별할 논리를 개발하고, 자신이 만든 논리에 입각해서 개와 고양이를 분별해 낸다. 


이제는 패턴이 없으면 몰라도, 패턴이 있기만 하다면 들키는 건 시간 문제인 세상이 되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냐... 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건, 우리 대부분이 패턴을 읽히는 위치에 있지, 패턴을 읽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아서 그렇다. 


많은 직장인들이 치르어 보았을 입사 시험에 심리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문제들에 답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회사가 알게 된다는 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드러내게 된다. 회사는 나를 알고, 나는 회사를 모른다. 그러니, 회사와의 싸움은 항상 버거울 밖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옛 격언은, 나의 패턴이 읽히는 이 시기에 더 중요하다. 패턴이 있으면 예측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으면 대비할 수 있다. 삼국지에 나오는 숱한 모략에서도 그 근간은 상대방의 행동에 대한 예측아닌가. 요즘도 다르지 않다. 온라인 게임에서도 내 전략이 예측을 당하면 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예측당하는 건 나를 매우 불리한 지경에 몰아 넣는 일이다. 


그래서 MBTI는 공개할 일이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건 꼭 나쁜 일이라 할 수 없지만, 내가 나의 MBTI를 생산적인 용도오 이용할 일은 별로 없다. 대부분 "나는 T라서 그래", "내가 N이잖아" 하면서 무언가의 변경거리로 쓰게 된다. 내 MBTI에 맞추어 일을 고르고, 회사를 고르고, 부서를 고를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나의 성향이 공개되면 그건 오히려 나를 읽어내고 나에 대해 대비할 기회를 주는 것 밖에 안 된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그 시대였다면, 조조든 유비든 애써 감추고자 했을 것이 분명한 그 MBTI를 지금 우리는 왜 공개하지 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


어쩌면 남에게 읽히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의 변명을 늘어 놓고, 어쩌면 사람과 부딪히면서 알아가는 것 보다 MBTI에 근거한 섣부른 선입견 위에서 편하게 관계를 정립하려는, 그런 욕구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편안함 끝에 나의 승리가 있을 확률은 작다. 백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오늘부터라도 나의 MBTI를 꼭꼭 숨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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