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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Jan 02. 2024

[휴양지에서의 단상 6] 리조트에 왜 gym이 있을까?

건강한 낭비를 몸에 익히면 

나는 일주일에 4일 운동한다. 이틀은 근력, 이틀은 유산소. 그리고 아침에는 보통 10-13층 높이 계단을 올라간다. 나름 꾸준히 운동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사실 체중 관리는 쉽지 않다. 식탐이 있는 편이라 좋아하는 음식을 보면 잘 참지 못하고, 또 몸에 좋지 않다는 음식도 좋아하다 보니 그렇다. 


그런데, 리조트 예약을 하려다 보니, 웬만한 리조트에는 다 운동시설이 있었다. 사우나가 없는 곳은 있어도 gym이 없는 곳은 없었고, 식당이 몇 개 안 되거나 별점이 낮은 곳이라도 gym이 없는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조금 이상했다. 도대체 왜 휴양지 리조트에 gym이 있는 걸까? 고민까지는 아니어도 궁금했는데, 친구가 답을 안다면서 말해 준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으니까, 배가 부르면 운동을 해서 칼로리를 소모해야 또 먹을 거 아냐!"


나는 박장대소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럼 오히려 리조트 입장에서는 음식 소비가 많아지고 gym  관리 비용도 늘어나는 건데? 게다가 gym 이 있으면 분명 보험료도 더 올라갈테고. 그걸 떠나서 더 먹으려고 운동한다는 게 말이 되나, 싶었다.


어쨌거나 휴양지에서 누가 gym을 가겠는가. 빛나는 태양과 맛있는 음식과 푸른 바다와 무제한의 술이 있는데, 도대체 gym을 갈 시간이 어디에 있겠는가 말이다. 운동하러 Gym에 갈 거면 굳이 휴양지에서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 운동 하고 싶은면 집에 돌아가서도 gym에 갈 시간은 있다. 그러니, 어느 리조트에 가든 분명 gym은 형식적으로 있는 것이고 텅텅 비어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함께 운동하는 사람과 약속을 했다. 매일 gym에 가서 30분씩이라도 운동을 하겠노라고. 혼자 gym에서 운동할 것이 뻔하니, 아마도 다른 휴양객들이 이상하게 쳐다 볼 지도 모르겠지만, 뭐 남들 눈치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리고 첫 날, 짐을 풀고 아내와 함께 리조트를 둘러본 뒤, 계획대로 gym에 갔다. 오후 5시 정도? 그런데 놀랍게도 여자 한 분이 운동을 하고 계섰다. 와, 여기까지 와서 운동하는 분이 계셨네... 이 분도 친구랑 약속을 하고 오셨나 아니면 자기 관리가 철저한 건가... 생각하면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왔다. 내일은 아침 일찍 가야지, 하면서.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일출을 보고, 아내와 함께 바닷가 썬베드에 자리를 맡아 놓은 다음 식당으로 향했다. 밥을 먹고 gym에 가려는 계획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는 gym 이 있었는데, 무심코 gym을 들여다 본 나는 깜짝 놀랐다. 


Gym은 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유산소 운동 기구들에는 대기자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눈을 의심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이 이른 시간에, 해가 뜨는 시간부터 붐비는 휴양지의 gym이라니.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하는 도시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여기는 휴양지 아닌가 말이다. 늘어지게 자고, 배부르게 먹고, 마음껏 마시고, 그리고 물을 즐기러 온 곳이 아닌가 말이다. 왜, 도대체 왜, 휴양지에서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것일까. 모두가 나처럼 친구와 약속을 한 것도 아닐텐데.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하고 나왔는데도, 여전히 gym은 붐비고 있었다. 그래서 treadmill 에서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 말을 해 보았다. 


"어제보니 오후에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구요"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대답하셨다. 


"알아요. 그런데, 이게 제 하루 루틴이예요"


루틴 -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루틴의 힘이로구나. 어쩌면 오후에 운동하면 줄 서는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으니, 이 사람은 아침을 운동으로 시작하는 이 루틴으로 인해 이 리조트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데에만 1시간씩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루틴이 리조트에 있는 날이든, 회사에 가는 날이는 집에서 쉬는 날이든, 이 사람의 평생을 따라다닌다고 생각하면, 이것만큼 건강한 낭비가 어디에 있겠나 싶었다. 


휴양지 리조트에 gym이 있는 이유는, 휴양지에 오는 사람 중에는 아침 운동을 루틴으로 삼는 고객이 많기 때문이었고, 그런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함이었다. 


운동 선수들이 최상의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 고유의 행동과 절차를 반복하는 것을 루틴이라고 한다는데, 생각해 보면 꼭 그런 상황에 국한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상황이 바뀌고, 몸 상태가 달라지고, 여건이 나빠져도 어떤 특정한 것을 반복적으로 하게 하는 힘, 그걸 모두 루틴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루틴은 자기 관리의 기본일지도. 


루틴은 습관이 아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해야 하고, 꼭 좋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래서 일부러 에너지를 소비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 루틴을 몸에 배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으로 몸에 새긴 루틴이 없으면, 상황 핑계, 몸 핑계, 날씨 핑계... 이렇게 핑계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 것을 나는 수도 없이 경험하고, 또 보았더랬다.


2024년은 새로이 몸에 익힐 루틴을, 나만의 건강한 낭비를, 핑계대지 않을 근거를, 마음에 적어 놓는 것으로 새해를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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