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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30. 2023

[휴양지에서의 단상 5] 아무도 서빙하러 오지 않았어!

그러려니, 라는 사고방식

내가 묵은 리조트에는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이 2군데 있었다. 하나는 양식과 멕시코 음식을 요리해 주는 곳이고, 다른 곳은 호텔 부페처럼 화려하게 차려진 곳이었다. 나는 요리사가 해 주는 음식을 좋아했고, 아내는 부페를 좋아했다. 적어도 휴가 중에는 아내에게 맞춰주기 위해, 아침은 거의 매일 부페로 먹었다. 


대부분의 서양 문화권 식당이 그렇듯, 식당에 가면 누군가가 테이블로 안내를 해 준다. 그러면,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가 와서 필요한 음료는 없는 지 물어보고, 물을 주거나 커피를 따라주거나, 햇빛을 막기 위해 커튼을 쳐 주고, 우리는 음식이 차려진 곳에 가서 먹을 거리를 접시에 담아 오면 된다. 간단하다. 


그런데, 그 날은 자리에 앉은 우리에게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와 아내는 그러려니, 하고 나가서 음식을 가지고 왔다. 그런데 그 때까지도 우리 물 컵에는 물이 없었고, 웨이터가 다가 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편이라, 주위를 둘러 보았는데 웨이터는 아무도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커피 주전자만 있었다 (참고로 부페에 있는 커피는 멕시칸 커피라고 해서 신맛이 강해서 내게는 맞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사람이 많아서 따로 미국식 커피를 주전자에 준비해 놓은 듯 했다).


그러려니, 하고 내가 직접 따라 마시기 위해 내 커피 잔을 들고 커피 주전자가 놓은 곳으로 갔다. 그런데, 커피 주전자가 비어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또 커피 주전자가 있었다. 그래서 내 커피잔을 들고 거기까지 가 보니, 그 주전자에는 커피가 있었다. 그래서 내 잔에 커피를 따라 가지고 와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식사를 잘 마쳤다. 


그런데, 우리 옆 자리에 앉은 백인 여자는 우리 보다 먼저 자리에 앉았는데,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식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리조트에서 혼자 즐기는 사람도 종종 볼 수는 있었지만, 식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아마도 일행을 기다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식사를 마칠 무렵, 드디어 웨이터가 우리 쪽으로 왔다. 그리고는 그 여성 분께 먼저 물었다.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 여자 분이 거의 고함 치듯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기 앉아 있은 지 30분이 되어 가는데, 아무도 서빙하러 오지 않았어!!!"


아니, 그래서 안 먹고 있었던거야?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자리에 앉으면 당연히 웨이터가 와서 물이나 커피를 주고, 그러면 냅킨을 펴 두고 나가서 음식을 가지고 온다는 그 방식에 익숙한 그 여성 분은, 손을 들거나 소리쳐서 웨이터를 부르는 것은 격이 낮은 행동이라는 사고에 익숙했던 그 여성 분은, 이런 규모의 리조트에 와서는 자리에 앉으면 마땅히 웨이터가 서빙하기 위해 달려와야 한다고 기대했던 그 여성 분은, 그 사고 방식에 갇혀서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않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웨이터를 마냥 기다리면서. 


당연히 웨이터는 연신 사과를 했지만, 나는 나와 내 아내가 그 여성 분과 같은 사고를 갖지 않고 있던 것에 감사했다. 


목적이 뚜렷하면 중간에 생기는 잡다한 일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목적이 뚜렷하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은 일에 집착하게 된다.


손님이 일어나서 직접 커피 잔을 들고 다니면서, 커피 주전자를 들고 커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은, 어쩌면 그 여성 분이 보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는 아침 식사를 하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비록 웨이터가 달려와서 커피를 따라주지 않아 혹시 조금 불편했을지는 몰라도, 아침 식사를 하는 데에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도 주위를 둘러보면 들릴 것이다. 내가 위로부터 요구받고, 또 아래에 요구하는, "아무도 서빙하러 오지 않았어" 라는 외침이. 그리고 보일 것이다. 그래서 아침을 못 먹고 있는 나의 모습이. 


서빙하러 오지 않으면 어떤가. 어쩌면 조금은 무성의한 듯 한 "그러려니" 라는 사고 방식이 우리가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해 주는 도구가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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