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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30. 2023

[휴양지에서의 단상 (4)] 천국과 지옥이 같이 있다

유람선 승무원은 유람하는 것이 아니다

멕시코로 가는 공항에서 아침 일출을 찍어 페북에 올렸더니, 후배가 카톡을 보냈다. 


- 선배님, 공항이세요? 저희도 공항이에요.

- 어, 그래? 어디 가는데? 우리는 칸쿤가는 길이야.


그런데, 그 이후로 카톡이 없었다. 아마도 이륙 중인 모양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멕시코 리조트에 도착해서 짐을 푸는데, 카톡이 왔다. 


- 저희도 칸쿤이예요!


이런 우연이. 반가웠지만, 두 리조트 사이의 거리가 좀 멀어서 한 번도 만나 보지는 못했다. 가끔 후배가 페북에 올리는 사진만 보는데, 어느 사진에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In the Heaven...


천국이라니, 얼마나 좋으면 그랬을까. 칸쿤을 지상 낙원이네, 천국이네 하는 표현들은 많이 들어 보았으니 놀랍지는 않았다. 나도 좋았으니.


다음 날, 아침을 먹으려고 아내와 함께 리조트 식당 중 공기 좋은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으로 갔다. 그런데 서빙을 하는 웨이터의 표정이 유난히 밝고 활기찼다. 대부분이 다 친절했지만, 유난히 친절한 편이었다. 그래서 좋은 일이 있느냐고 예의상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답한다. 


"내일이 쉬는 날이예요!"


움찔했다 - 속으로만. 그러니까, 그 웨이터는 태양이 내리 쬐는 이 해변가 식당에, 남들이 천국이라는 이곳에, 내일은 오지 않을 수 있어서 기쁜 것이었다. 


아, 이 사람은 내가 이렇게 즐거워하는 리조트에 오지 않을 수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구나, 누구나 한 번은 와 보고 싶어하는 그 all inclusive 리조트가, 이 평온한 해변이, 그 사람에게는 오고 싶지 않은 곳이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한 때 유람선 승무원 임시직 자리가 최고의 알바로 뜨던 때가 있었다. 쉽게 생각하면 최고의 알바 자리다. 세계여행도 공짜로 하고, 게다가 돈도 벌고 - 바로 그런 것이 일석이조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해 본 사람의 말은 달랐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지 유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랬다. 인터뷰를 보니 유람선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유람선이 출항하는 순간 식당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했다. 수 천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식당을 정리하고, 다시 식당을 치우고, 다음 음식을 준비하는데, 육지의 식당보다 훨씬 힘들다고 했다. 쉴 틈은 없고, 숙소도 편하지 않은데, 혹시 유람객이 나쁜 리뷰라도 하나 달면 여지없이 감봉이나 해고라 마음도 편하지 않다는, 그래서 그 유람선이 지옥같았다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고보니, 어제 밤 늦게까지 멕시코 음식과 멕스코 춤, 노래 공연으로 파티를 하느라고 꾸며놓은 그 모든 탁자와 무대가 아침 7시에 식사하러 나와 보니 이미 다 치워져 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언제 다 치웠냐고 했더니, 씨익 웃으면서 새벽까지 치웠단다.


그러니, 유람선이나 칸쿤의 리조트는 누구에게나 천국이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그 곳을 지옥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함께 있다. 


어쩌면 천국과 지옥은 물리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입장에 따라 바뀌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일 힘들어하는 공간에도 그 곳을 행복하게 즐기는 사람들은 있고, 우리가 행복한 그 공간에도 그 곳을 지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우리는 금수저가 아니니, 어디에 서든 그곳이 지옥에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다만,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유람선 승무원에서 유람선 관광객이 되고, 리조트 서버에서 리조트 휴양객이 되는 길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누구의 말처럼 마음가짐을 바꾼다고 내가 갑자기 유람선 요리사에서 관광객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 만으로는, 마음의 평안은 얻을 지언정, 내가 휴양객이 되지는 못한다. 그래도 분명 길은 있으니, 휴양객으로 살고 싶다면 그 길을 걷는 것이 답이다. 


나는 지금 휴양객인가, 라고 질문해 보니, 참 오래 악착같이 살았는데도 아직은 휴양지에서 일하는 사람이지, 휴양객의 자리에 가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다. 또 펜을 잡고, 2024년을 쪼개어 계획하고,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날들이 휴양객으로서의 날들이기를 기대해 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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