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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28. 2023

[휴양지에서의 단상 (3)] 새해에는 투자보다 투기

선물보다는 뇌물

캐나다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팁 문화가 일반화 되어 있다. 혹자는 세금이나 다름없다고 하는데, 그 비율도 내가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에는 가격의 10% 정도였던 것이, 이제는 15%를 기본으로 기대하는 수준이 되었다. 


내가 묵었던 멕시코의 리조트 역시 팁 문화가 일반적이었다. 미국의 영향일 수도 있겠지만, 휴양지라서 어쩌면 더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멕시코에서 팁을 주면서 나는 그 동안 내가 캐나다에서 팁을 잘 못 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캐나다에서는, 다른 서비스는 받을 일이 잘 없었지만, 보통 음식점에서 팁을 주는 일이 많았다. 그럼, 식사를 하고 나서 계산을 할 때, 내가 받은 서비스의 만족도에 따라 10%든 15%든, 혹은 0%든 내가 결정해서 결재를 한다. 


그러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은 내게서 더 많은 팁을 받으려면 내가 식사를 하는 동안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특히 음식점의 경우는 팁 수입이 많아서 최저 임금 이하로 받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내가 멕시코로 출발하기 전, 내게 조언을 해 주신 분이 이렇게 말했다. 


"팁을 미리 줘"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다. 아니, 서비스도 받지 않고 왜 팁을 준다는 말인가. 내가 기대한 서비스보다 더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주는 것이 팁 아닌가. 


어쨌든 그렇게 첫 날 저녁 식사자리에 가서 나는 호기롭게 Anejo (아녜호라고 발음하는 것 같았다) 데킬라를 주문했다. 꼬냑에 VS, VSOP, XO 처럼 등급이 있듯이 데낄라에도 등급이 있는데, 숙성이 오래 된 것이 Anejo라고 나름 공부를 해 간 터였다. 


그런데, all inclusive이지만 Anejo 데낄라는 가격에 포함이 안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아래급인 Reposado 데낄라는 어떠냐고 친절하게 물어본다. 뭐, 그것도 좋은 등금이라고 들었으니 미리 공부해 간 Don Julio (돈 훌리오) 브랜드의 Reposado  를 달라고 해서 마셨다. 


그것만 해도 사실 all inclusive 에서 제공하는 술의 수준이 많이 내려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10년 전만 해도 조니워커 블루라벨을 1주일 내내 마시다 왔다는 분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는데, 요즘은 잘해야 골드라벨 정도라고 했었다. 그래서 데낄라도 그런가 했다. 


그 다음 날, 같은 식당에 가서 다른 웨이터를 만났다. 그런데, 내가 들은 조언이 기억나서 메뉴판을 가져다 주는 웨이터에게 일단 1달러를 주었다. 그리고 나중에 메뉴를 주문하면서 한 번 더 물어 보았다. Anejo 데낄라가 있느냐고. 돈을 내라면 내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랬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1800으로 드릴 까요, Don Julio로 드릴까요?" (둘 다 데낄라 브랜드임)


깜짝 놀랐다. 어제 웨이터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닐거다. 아마도 Anejo 데낄라는 돈을 내야 마실 수 있는 술인 건 사실일거다. 그런데, 팁 1불이 그걸 바꾸다니. 그 저녁에 나는 브랜드 3가지를 돌아가면서 Anejo 데낄라 4잔을 마실 수 있었다. 


사실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난 한국 대기업의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뇌물은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버는 기술이다" 라고. 


나는 그 동안 팁을 선물로 사용했더랬다. 내가 받은 것이 고맙고, 감동스럽고,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에 주는 자 입장에서 전달하는 선물. 그런데, 내가 좋은 서비스를 받을 지 받지 못할 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돈을 날릴 생각으로 (금액이 크지는 않았지만) 뿌리니 몇 배로 댓가를 받았다. 


그래서 나는 바로 우리 부부를 관리하는 사람 (butler라고 부른다)에게, 그리고 우리 방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팁을 30불씩 주었다. 그랬더니, 하루에 방을 2-3번씩 치워주고, 화장실에는 각종 amenity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마법이다. 웨이터에게, butler에게, 청소하시는 분들께, 그런 권한과 능력이 있을 줄이야.


그렇게 알게 되었다. 팁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뇌물로 사용할 때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나는 팁은 항상 후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휴양지에서는, 설사 원하는 결과를 얻을 확신이 없더라도, 팁은 투기처럼 미리 줄 때 효과가 더 클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회사에서도, 업무나 친목 모임에서도, 가정에서도 내가 할 수만 있다면 투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직원이 하는 일 만큼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잠재력을 보고 대우를 먼저 해 주고, 월급 받는만큰 일 하는 것이 아니라 상사의 판단력을 믿고 기대 이상의 결과를 내 주고, 신혼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갔지만 배우자가 좋아할 때까지 먼저 베풀어주는 그런 투기. 


그래서, 2024년을 나는 투자자가 아니라 투기꾼으로 살아 보기로 한다. 대박 나는 한 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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