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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Dec 27. 2023

[휴양지에서의 단상 (2)] 리조트 선정 기준

한국인 없는 곳으로 가기를 잘 했다. 

멕시코로의 휴가는 시간을 내기도 어려웠지만, 리조트를 선정하는 건 더 어려웠다. 다행히도 캐나다에는 한 번쯤 칸쿤 여행을 다녀오신 분들이 대부분이라 조언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칸쿤에 리조트가 많다보니, 어느 한 곳으로 의견이 모이지는 않았다. 다만, 두 가지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첫째, all inclusive 로 가라 - 음식과 술이 무제한으로 공급되는 시스템인데, 조금 비싸도 그만한 값을 하니 꼭 all inclusive로 가라고 하셨다. 둘째, 한국인 없는 곳으로 가라 - 이 부분은 명확한 설명들은 없으셨으나, 아무래도 말을 함부로 하기도 불편하고 행동거지가 꺼려지는 경우가 많다고 하셨다. 


나는 외국에서 한국인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두 번째 조언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리조트를 골랐다. 뭐, 혹시라토 토론토에서 휴가 오신 한국인 중에 내 얼굴 아는 분이 계시면 어떨까 조심스럽기도 했으니까. 우리 부부는 리조트에서만 머물렀는데, 한국인은 신혼 여행을 온 두 커플 밖에는 만나지 못했으니, 나름 한국인 없는 곳을 고르는 건 성공이었던 듯 하다. 


리조트에 가 보니, 해변에 썬 베드가 주-욱 깔려있다. 리조트에서 설치한 것인데, 커튼 등이 달려있는 고급 썬 베드는 하루에 80불 정도를 내야 하지만 (비싼 듯 하지만, 그러면 마사지도 서비스로 따라오니, 가성비는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그렇지 않은 곳은 무료다. 좋은 곳에도 유료와 무료가 섞여 있어서, 유료만 좋은 경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당근 무료 썬베드다. 마사지는 토론토에도 좋은 스포츠 마사지 전문 샾이 많이 있는데, 굳이 비 전문가에게 해변에서 마사지를 받을 이유는 없다. 


칸쿤에서의 첫 아침 - 다행히 토론토와 시차가 없어서 늘 하던대로 일어나 베란다에 앉아 있으니, 검은 하늘이 밝아 오기 시작한다. 해 뜨는 걸 해변에서, 썬베드에 누워서 봐야겠다, 하는 생각에 아내와 함께 바닷가로 나갔다. 그런데...


어제 봐 둔 썬베드 자리에 백인 할아버지가 나와 계셨고, 본인 자리를 포함해서 3자리를 수건과 책 등으로 맡아 놓고 계셨다. 


아니, 자리 맡기? - 아, 이거 많이 해 본 건데. 


고등학교에서 선생님 앞 자리 맡으려고 늘 하덧 짓이고, 회사 다니면서 학원 다닐 때에도 유명 강사 수업에는 종종 하던 짓이었다. 그걸 이 휴양지에 와서 보다니. 인터넷을 찾아 보니 휴양지에서 썬베드 자리 맡기는 흔한 일이었고,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무례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날 부터는 나도 자리 맡기를 시전했다. 처음에는 타월이나 책으로 했으나, 소나기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괜찮은 것은 텀블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맥주나 칵테일을 방아 오랫동안 차갑데 먹기에 좋다고 해서 가져간 텀블러가 자리 맡기에 사용될 줄이야. 


그 백인 할아버지도 매일 나오셨으나, 백인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을 자리 맡기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진리다. 해변이 넓고 수영장도 많아 몇 군데 자리를 바꿔가면서 맡기는 했지만, 나와 아내는 첫 날 이후 마음에 드는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만일 한국인이 많은 리조트였다면 어땠을까? 글쎄, 모르긴 몰라도 마음에 드는 자리 맡기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고 보면, 고등학생 시절부터 참 지열한 경쟁을 거쳤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으니 웬만한 건 만만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고.


어쨌는 나는 나 나름대로 한국인이 많은 리조트를 피하라고 할 이유가 생겼다. 한국인이 적으면, 마음에 드는 썬베드를 차지하기가 쉽다고.


마음에 드는 썬베드에 앉아서 수평선과 바다와 바람과 파도를 한 번 제대로 즐겨보면 그걸 포기 하기 어렵다. 그 자리를 치열하게 경쟁해야만 따 낼 수 있는 환경으로 굳이 걸어 들어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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