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때우기 vs 금쪽같은 내 한 끼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던 시절, 회사에서는 식권이 나왔다. 구내 식당은 없었지만, 이 식권을 가지고 근처 아무 식당이나 가서 식권을 내고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식당들은 이 식권을 모아 한 달에 한 번씩 우리 회사에 다시 청구하는 시스템이었다. 토요일에도 당연히 근무를 하던 때였으니, 한 달에 최소 25장씩은 식권이 나왔다.
이 식권은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그 가격 밑으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었고, 그 가격이 넘어가면 추가 비용을 내야 했다. 내 기억으로 식권 가격이 꽤 높아서 요릿집이 아닌 이상 한 끼 식사에 식권 한 장이면 항상 충분했다.
하루 한 장으로 지급되는 식권이지만 우리 부서는 출장이 많은 부서라서 식권을 다 소진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월말이면 남은 식권을 모아 중국집에가서 함께 파티를 했다. 어차피 다음 달이 되면 못 쓰는 것이니, 한 달의 마지막 주에는 항상 부서 회식이 있었다.
그걸 안 경영지원팀에서 어느 날 사장님께 건의를 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남는 식권을 모아 월말에 몰아 쓰는 관행을 척결하자고 (아마도 우리 부서를 타겟으로 한 듯). 그랬더니, 사장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단다. (사장님 비서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다)
아, 먹는 거 가지고 좀 그러지 마세요.
그랬다. 그 때에도 먹는 것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먹는 건 맘껏 좀 먹게 하는 것이 중요한 때였다. 하지만, 그 중요함은 "무엇을 먹느냐"에 있지는 않았다. 남들과 같은 것을 "언제든"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한 때였다. 설렁탕이든 짜장면이든 된장찌개든 누구나 먹는 것은 비슷했고, 그래서 남들 먹는 건 웬만하면 나도 다 먹어볼 수 있었다. 먹는 것으로 차별을 느끼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점심은 "먹는다"라는 느낌 보다는 "때운다"라는 느낌이 강했다. 1시간이라는 점심 시간동안 우루루 식당에 몰려 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먹고, 다시 우루루 회사로 돌아오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한다. 먹는 매 한 끼가 소중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 끼 때운다"라는 말은 정말 경제적으로 그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말이고, 많은 직장인들이 "금쪽같은 내 한 끼"를 바라며, 주중에도 주말에도 맛집 앞에서 장시간 대기 줄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 때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금쪽" 같은 한 끼이니 대기하는 시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금액도 지불해야 한다.
"트렌드코리아"라는 저서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님은 이런 추세를 연구하는 저서도 내 놓으셨을 정도니, 이제 한 끼를 금쪽처럼 여겨야 하는 건 소위 국룰인지도 모르겠다.
한 번 지나가는 나만의 경험이라면 그렇게 큰 돈을 써 가면서 "한 번 먹어 볼" 이유는 없을 지도 모른다. 이걸 가능케 하는 건 아마도 핸드폰과 SNS의 힘일테다. 내 경험을 사진 찍어 SNS에 올리면, 그건 그저 지나가는 한 번의 추억이 아니라 평생의 기록이 되고, 나만이 아닌 내 모든 지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이 된다.
그래서 그 모든 시간과 그 비용이 정당화가 된다.
그것이 소위 트렌드라 하니 비판할 일도 아니고 두 눈 치켜뜨고 노려볼 일도 아니다. 그저 트렌드에 맞추어 살고, 트렌드를 이용해서 사업을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전공한 식물병리학은 미생물이 식물에 어떻게 병을 내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식물병리학 초창기에 어느 연구자가 곰팡이가 식물에 침투하는 현미경 사진을 찍어냈다. 이건 야생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잡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 보다 훨씬, 훠~얼씬 어려운 일이었고, 이 사진은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 게제되었다. 그 특정 곰팡이가 그 식물을 침투하는 기작은 교과서에도 실렸다.
그런데, 아무리 그 기작을 방해해도 계속 병이 나는 거다. 곰팡이가 식물에 침입하지 못하게 했는데, 어떻게 병이 나는 걸까. 후대에 밝혀진 바로는, 그 연구자가 찍은 사진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였고, 그 곰팡이의 진정한 침입 기작은 따로 있었다. 주요 기작을 놓치고, 예외적인 상황만 방지하려고 했으니 병을 막을 수 없을 밖에.
매끼를 금쪽같이 채울 수 있다면야 물론 좋은 일이지만, 글쎄,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어쩌면 한 끼를 금쪽으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한 끼 때우기"를 시전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작금의 "금쪽같은 한 끼"는 그 예외적인 현미경 사진처럼 우리의 매일이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예외의 순간은 아닐까.
매일을 놓치고 예외에 이토록 집중한다면 정답에 다다를 수 있을까.
이 시대의 또 다른 키워드는 "평균 실종"이라고 한다. 양극화가 모든 면에서 심해진다는 것인데, 식사도 예외가 아닌지라, 그래서 비싼 것과 싼 것에 수요가 몰리고 예전에 누구나 함께 나누던 음식들의 인기는 시들하다는 말도 들린다.
매일 평균적인 음식으로 점심 한 끼를 때우면서 평균을 함께 나누었던 그 때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아마도 내가 꼰대라는 반증이리라. 그래도, 비록 의미는 다르겠지만, 나도 그 때 우리 사장님처럼 한 마디 하고 싶다.
아, 먹는 거 가지고 좀 그러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