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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광훈 Sep 07. 2024

그건 "나 답게"가 아니라 "내 맘대로" 아닌가요.

아름다움의 이면 

업무상 고객과 상담을 하거나, 멘토링을 하거나, 직업 관련 세미나를 하다보면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누게 되는 경우다 많다. 그런데, 한국처럼 성적과 실적에만 목을 매는 건 아님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땅에서도 절망을 느낀다는 학생, 직장인, 사장님들이 적지 않다. 


캐나다에서도 상황이 그러니, 한국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학원에서, 그렇게 성적만 잘 받기 위해 노력하다가 절망하는 학생들, 한국의 회사에서 실적을 내서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절망하는 직장인들이 많은 건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사장이든, 그렇게 한계를 느끼고 절망할 때에는 "너 답게 살아"라는 말을 들으면 그나마 힘이 난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남이 간 길, 남이 가라는 길을 가려고 애 썼는데,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그 해방감에서 기운을 얻는다고 한다. 출구가 있다니, 참 다행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을 얻었다는 분들께서 그 후에 걷는 길을 보면 "나 답게" 사는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니라 "내 맘대로" 살면서 나 답게 사는 방법을 찾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흔히 "나 답게" 사는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내 맘대로" 사는 것은 자신의 욕구와 충동을 분별없이 따라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가치관과 욕구는 대체 어떻게 구별해야 할까.


부모님께서는 내가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가기 원하셨다. 아마 부모님께서는 그 길이 내게 더 잘 맞는, 나 다움에 잘 맞는 길이 되리라 생각하신 것 같다. 하지만, 나름 모범생 축에 들면서도 반항끼가 좀 많았던 나는, 부모님과 상의없이 이과를 가는 것으로 내 반항을 표출했다. 그게 부모님께 떠 밀리는 대신 나 다움을 확보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문과를 미시던 부모님도, 반항으로 이과를 선택한 나도, 중요한 한 가지를 빠뜨렸다. 


나 답게 살려면 우선 나의 정체성을 파악해야 한다. 우리에게 흔히 표본으로 주어지는 길은 동그라마가 잘 달려갈 수 있는 평면 도로거나, 네모가 잘 달릴 수 있는 일정한 굴곡으로 이루어진 길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은 이렇게 둥글게 생기지도 않았고, 이렇게 정확하게 네모도 아니다. 오히려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깍인 독특한 모양인 경우가 더 많다. 이런 모양으로는 동그라미와 같이 평평한 도로를 달리기도 어렵고, 일정한 굴곡이 있는 길은 넘어 가기도 어렵다. 



그래서 "나 답게" 사는 첫 번째 단계는 내 모양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부분을 고민하지 않는 대부분은 "나 다움"은 결국 "내 맘대로"가 된다. 


그렇게 나의 모양을 파악하고 나면 두 가지 길이 생긴다


첫 째는 이미 주어진 평평한 길을 잘 달릴 수 있도록 나를 적응시키는 것이다. 나 다움은 유지하되 안으로 숨기고, 남들이 가라는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나를 포장하는 것이다. 



평탄한 길을 달려 가는 데에는, 그리고 다른 이들과 타협하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지만, 이건 나를 숨겨야 하니 사실 온전히 나 답게 산다고는 할 수 없다. 


둘 째는 내 앞길을 나에게 맞게 깔아가면서 굴러가는 것이다. 내 모습대로 갈 수 있는 길을 만들면서 나아가면, 나 답게 굴러갈 수 있다. 이것이 나 답게 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시간과 노력을 써야한다. 내게 맞는 길이 어떤 것인지 고민하고, 기존에 없던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고속도로를 욕심내도 안 되고, 굴곡이 일정한 길을 택할 수도 없다. 매 순간 다른 모양의 길을 만들어가면서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다. 네모나 동그라미인 척하며 사는 길에 비해 시간과 노력이 몇 곱절이나 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나 답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시간과 노력이 더 들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나 답게"가 아니라 "내 맘대로"살고 있을 확율이 높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의미를 해석하는 여러 의견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설명하기로 "아름"의 의미는 "나"라는 뜻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나 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봄 꽃을 보면서, 가을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것이 노력해서 만든 아름다움을 매일 즐기면서 산다. 다른 것들의 아름다움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된다. 매일 값 없이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아름답다는 것이, 나 답다는 것이 어떤 댓가를 요구하는지를 잊고 산다. 


예전에 우스갯 소리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보고 백조에 비유하곤 했다. 백조는 겉으로 보기에는 호수 위를 우아하게 지나가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니지만, 그 밑으로는 열심히 발장구를 치고 있는데 물 속에서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름다움의 이면은 고되다. 고되지 않은 아름다움은 없다. 


남이 만든 아름다움에 취한 나머지 아름다움이라는 결과만 원하고 고된 그 이면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 답게" 라는 아름다움은 내 것으로 만들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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