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오가 되어 있으신가요?
지난 2012년 이후, 토론토 내에서 한국인의 부동산 투자가 크게 늘었다. 기존 주택에 대한 투자도 많았지만, 주로 신규 분양 아파트 투자에 대한 붐이 일어서, 월세를 사는 가정이 2-3채씩 분양을 받은 케이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투자를 하신 분은 5-10년만에 2배 수익을 내는 경우도 많았다.
이민자가 많다보니 세입자는 넘쳐나고, 세입자에게 받은 월세로 대출금이나 관리비가 충분히 감당이 되니, 굳이 매각을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가지고 있다 보면 결국 가격은 또 오른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분들이 신축 아파트 투자에 뛰어드셨다.
그런데, 팬데믹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상황이 급반전되었다.
기존에 아파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이자율이 오르다보니 월세로 대출금도 갚지 못해서 매달 적자가 났다. 그러다보니 아파트 시장 전체에 대한 감정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2023년부터는 감정가격이 분양 가격보다 낮아지는 경우가 생기더니, 2024년에는 대부분의 신축 아파트 감정 가격이 분양가보다 낮아졌다.
그러니 이제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하는 분들은 낮아진 감정가로 인해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기 어려워졌다. 보통 토론토에서는 분양가의 80%가 쉽게 대출이 되었는데, 이제는 65%도 받기가 어려우니, 그 차액을 메우지 못하면 시공업자에게 소송을 당하게 된다.
은행에서 필요한 돈이 나오지 않고, 모아놓은 돈은 없고, 소송은 피해야 하고 - 그럴 땐, 다른 방법이 없다. 사채를 써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 1세들은 사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사채를 쓰는 것은 창피한 일이요, 사채를 쓰면 패가망신한다는 생각이 굳어져 있다. 게다가 여기는 모국도 아니고 외국땅이다. 본인들이 캐나다라는 타국 땅에서 사채를 쓰게 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을 비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사채 서류에 서명을 하시면서 “내가 어쩌다 사채까지 쓰는 상황이 되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이시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사채를 쓴다는 건, 많은 한인 1세들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은 크나큰 수치다.
하지만, 조건을 잘 따져보면 캐나다의 사채는 한국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일단 변호사가 대리하지 않는 사채는 불법이다. 물론 변호사 비용이 들기는 하지만, 불법적인 사채 거래에 연루될 위험은 거의 없다. 이율도 보통 연 12% 선이고, 연체를 해도 사채업자가 페널티를 물리거나 이율을 올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사고가 나는 상황을 보아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사채를 쓴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캐나다는 돈을 빌려준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피해를 보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캐나다의 사채 시장은 돈을 빌리는 사람보다 빌려 주는 사람이 더 불안한 곳이다.
그렇기에, 캐나다의 사채는 한국의 사채와는 다르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한다면 한국의 새마을 금고와 같은 2차 혹은 3차 금융 기관의 역할을 캐나다는 사채 시장이 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자 이외에 "lender fee"나 "broker fee" 등의 명목으로 비용이 나가고 사채업자 측의 변호사 비용까지 돈을 빌리는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나, 돈을 갚을 때에도 또 비용을 써야 등기가 해지되는 등 은행권 대출에 비해 돈을 빌리는 측의 비용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사채를 쓰시는 분들 중에는 “이건 사채업자 좋은 일만 시키는 것이다. 나중에는 내가 꼭 사채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되겠다” 며 억울해 하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이렇게 사채를 쓰면서 억울해 하신 분 중에서 실제로 나중에 사채업자가 되시는 분이 꼭 나온다.
내 경험상 사채를 써 보신 분들 중에서 90% 는 억울해 하시면서 사채업자가 되어야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중 3% 정도만이 사채를 어떻게든 다 갚으시고, 더 나아가 돈을 더 모아서, 그렇게 사채업자가 된다.
왜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나 정기 예금대신 사채 투자를 시작하는지 여쭤보면, 백이면 백, 사채를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알았다고 하신다. 사채 투자만 하는 건 아니지만, 만일 사채를 써 보지 않았더라면 돈이 생겨도 은행에 예금을 하거나 주식을 하거나 부동산 투자만 했을 거라고, 사채를 써 본 덕분에 사채 투자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렇게 말씀 하신다.
그러고보면 전화위복의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는 것이 사실인 듯 싶다. 다만, 이 전화위복에는 그에 걸맞는 각오가 필요하다. 입에서 끝나는 각오가 있고, 손과 발까지 이어지는 각오가 있다. 사채를 갚는 데까지만 발휘되는 각오가 있고, 갚은 후에 사채업자가 되는데에 까지 이르게 하는 각오가 있다.
패가망신이고 치욕이라며 나를 눈물을 흘리게 한 그런 일들도, 오래동안 나를 움직이게 하는 큰 각오를 불러일으키기는 쉽지 않다. 어제했던 각오를 나는 지금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걸까.
나도 사채업자가 되겠노라 하면 새롭고 큰 각오가 생길까. 만일 그렇다면 나도 사채업자가 되고 싶다. 나를 오래도록 지속시키는 큰 각오를 하고 싶다. 수확해야할 가을이 벌써 코 앞에 왔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