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에 즈음하여
오늘 환갑이 가까운 어떤 고객이 오셔서 상담을 하던 중, 본인이 스스로 유튜브 쇼츠를 만들어 올리셨다면서 기뻐하신다. 매일 보는 쇼츠보다는 조금 더 간단해 보이는, 퀴즈형 쇼츠다. 지금까지 몇 개를 만들어서 올리셨다고 했다.
처음인데, 배울 곳도 마땅치 않아 독학을 하셨는데, 너무 힘드셨단다. 그 짧은 15초짜리 영상 하나를 만드는 데에 알아야 할 건 왜 그렇게 많고 고려해야 할 것은 왜 그렇게 많은지 너무 어려우셨단다. 그런데, 하나를 만들고 나니, 같은 형식으로 두 번째를 만드는 건 10분도 안 걸리더라면서, 요즘은 쇼츠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셨다고 했다.
그 분에게 쇼츠 만드는 법을 알려준 선생님은 유튜브였다. 동영상을 보고 따라서 프로그램도 깔고, 자막도 붙이고, 음악도 넣고, 그렇게 하신 것이었다. 내가 해 보고는 싶지만 시간이 없어서 아직 시도를 못해 보았다고 하니, 바로 강사를 자청하신다. 자신이 한 실수들을 하지 않도록 조언을 해 주실테니, 그 분께 배우면 난 그 분보다 더 빨리 쇼츠를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은 확실하다.
그런데, 나에게 강의를 제안하는 이 분은 쇼츠 제작자로 친다면 어느 정도의 수준일까? 아마도 왕초보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초보아닐까? 그러다 또 생각이 들었다. 그 분에게 쇼츠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 수 많은 유튜브 동영상 중에서, 영상 전문가가 만든 자료는 얼마나 될까? 그 동영상들은 쇼츠의 고수들이 만든 것일까?
생각해 보면, 지금처럼 남을 가르치겠노라 말하기가 쉬운 적은 없었다. 예전에는 뭐든 가르치는 데에도 자격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고, 어설프게 가르침을 제안했다가는 "지가 뭔데 가르치려들어"와 같은 핀잔을 듣기 십상이었다.
토익 교재를 집필하려면 토익 만점이라는 딱지를 달아야 했고, 차범근 축구교실의 유명세를 앞지를 수 있는 축구 교실은 없었다. 아무나 누군가를 가르칠 수 없는, 전문가만이 누군가를 가르치는 때였다.
하지만, 이제는 초보가 왕초보를 가르치는 시대다.
이제는 토익 성적과 무관하게 교재를 만들고 유튜브 영상을 올릴 수 있고, 축구 국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유튜브를 통해 축구 기술을 알린다. 초보도 빛이 날 수 있다.
초보를 빛나게 하는 건 당연히 왕초보들이다. 초보가 빛나 보인다면, 그 분야에서는 내가 아마도 왕초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제 막 쇼츠 3-4개를 찍은 고객이라도, 적어도 쇼츠 분야에서는 나에게 충분히 밝은 빛이 아닌가. 왕초보 딱지만 떼고 초보 자리에만 올라서면, 왕초보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은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러다 보면, 그렇게 작은 빛으로 어두컴컴한 왕보초의 세상에서 빛나다 보면, 내 빛을 더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잊을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내 빛을 키우는 대신 자꾸 어두운 곳을 찾아 다니게 되지는 않을까, 작은 빛으로도 빛날 수 있는 더 짙은 어둠을 찾아다니며 나의 밝음을 뽐내려고 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다.
그렇게 빛이 없어야만 빛나는 존재로 남는 것에 만족하게 되지는 않을까, 싶다.
나보다 밝은 빛을 찾아 다니는 것을, 그리고 그곳에서 내가 빛나지 못할 것을 것을, 내가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둡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들을 만나서, 나도 어둡지 않아도 빛날 수 있게 성장했으면 좋겠다.
아직은 내년 계획을 세우기에는 조금 이른 11월 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