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
내가 대학을 들어갈 때에는 서울대 의대보다 서울대 물리학과의 커트라인이 더 높을 때였다. 내 고등학교 동기 중에는 서울대 의대를 마다하고, 종로학원에서 3수 끝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합격한 녀석도 있었다.
요즘은 아니다. 누구나 안정적으로 돈 벌 미래를 꿈꾸다 보니 그런지는 몰라도 의대를 능가하는 이과의 학과는 없다. 하지만, 그건 비단 대한민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캐나다도 의대를 들어가기 위한 경쟁은 치열하다. 아니, 치열하다는 말로는 그 경쟁을 충분히 표현할 수 없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스펙 쌓기" 경쟁도 피할 수 없다. 한국보다 절대 약하지 않다.
대학교 학점은 당연히 만점에 가까워야 하고, 자원 봉사 역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운동이나 악기 하나 정도 못하는 아이들도 없다. 거기에 뭐라도 더 추가해야 쪼끔이라도 차별화 할 건덕지가 생긴다.
이과 학생으로 차별화하기 좋은 건 아무래도 학문적 성취다. 그래서 학부 시절에 어느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을 했다든지, 학회지에 학부생 신분으로 논문을 발표했다든지 하는 경력을 이력서에 넣기 위한 경쟁이 또 있다. 이 길은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게다가 북미에 있는 연줄 우선 경향의 영향으로 한국 학생을 위한 길은 더 좁다.
사실 연구실 입장에서는 학부생을 받는 것이 그다지 달라운 일은 아니다. 허드렛일을 시킬 수 있다는 효용이 크기는 하지만, 대학원생이면 다 아는 것을 일일이 가르쳐 가면서 일해야 하는 부담이 더 크다.
하지만, 많은 한국인 교수님들은 그런 기회가 한국 학생들에게 많이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알음알음으로 부탁하는 한국 학부생을 내 치지 못하고 받아 주신다. 큰 혜택이고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혜택을 받은 어떤 한국 학생 한 명이 해당 교수님에 대해 나쁜 평가를 하는 것을 들었다. 엎드려 절을 해도 시원치 않을텐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럴까, 궁금해서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설명해 주기를 자신이 관리해야 할 일 하나를 잊어버리고 놓쳐서 실험을 다시 하게 되었단다. 당연히 잘못한 일인 것을 안다고 했다. 그런데, 교수님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야단을 치고 세세하게 다시 지침을 내려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그래서 기분이 상해서 그 실험실은 이제 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했다.
황당하기도 했지만, 조금 한심했다. 그리고 예전 우리 조상들의 일화가 떠올랐다.
예전에도 구걸을 하던 사람들은 마을마다 당연히 있었다. 그런데 일은 하지 않고 그렇게 구걸로만 먹고 사는 사람을 부잣집에서 잡아다가 매질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니 구걸하는 것이 죄도 아닌데, 도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질을 하면 그냥 보내지 않고 굴비 한 두릅이라도 손에 들려서 내 보냈다는 것이다. 구걸하지 말고, 굴비라도 팔아서 밑천을 마련하고, 일을 해서 먹고 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부자 입장에서는 그저 밥 한끼 주는 것 보다 훨씬 더 손이 많이가고 돈이 드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름의 배려였다, 싶다.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귀찮지만 학부생을 실험실에 받아 주고, 학생이 변변치 않아 실험을 망쳤으면 잘라도 그만인데 굳이 다시 지침을 설명해 주고 다시 해 보라고 했다면, 내가 보기에 그건 전적으로 학생을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배려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나쁜 평가를 하는 건, 어쩌면 그 학생 개인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사이를 특별한 "사제지간"으로 가르치치 않고 그저 "인간관계"로 가르치는 캐나다의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가, 윗 사람과 아랫 사람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니, 매질을 하고 굴비를 들려 보내는 마음을 헤아릴 이 별로 없을 것 같기는 하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해도, 그래도 아직은 한국의 상황이 캐나다 보다는 낫다, 싶기는 하지만, 이러다가는 윗 사람이, 가진 자가, 이렇게 말할 때가 올 것이다.
"배려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
그 때가 되면 땅을 칠 자가 누구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