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의 전환
일반적으로 동서양은 서로 사고방식이 다르다고 한다. 예를들어, 동양에서는 세상을 “관계” 기준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강하고 서양에서는 세상을 “사물” 기준으로 파악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 언어에서는 동사가 중요하고, 서양 아이들은 명사를 먼저 배운다. 한국에서는 밥을 먹다가 “더 먹을래?” (동사 기준)라고 묻지만, 캐나다에서는 빵을 먹다가 More bread? (명사 기준)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막상 다른 환경에 처하면 한 환경에서는 장점이었던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단점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동서양의 사고방식 차이 만큼이나 식물병리학과 법학에서 생각하는 방식도 달랐다.
로스쿨은 철저하게 시험 위주로 평가를 하는 곳이다. 수업 출석을 중요하게 보는 교수는 거의 없다. 오히려 수업에 나오면 질문 받고 답변하는 일로 귀찮아 질 수 있다 - 물론 수업 시간에 떠드는 맛에 수업을 나오는 학생들은 어느 로스쿨, 어느 수업에나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만. 요즈음은 일반적인 강의 형식으로 진행하는 수업도 많지만, 일반적으로 북미권의 로스쿨 수업은 소위 말하는 소크라테스식 강의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질의와 대답, 그리고 이어지는 질의나 반박 등의 방법으로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수업을 듣기 싫어하는 학생들이 팀을 짜서 한 명은 수업을 듣고 녹음하면서 간단하게 정리하고, 다른 한 명은 녹음 내용과 정리 내용으로 수업을 정리하고, 또 다른 한 명은 그 노트를 기반으로 기출 문제에 대한 시험 자료를 만드는 등 분업으로 수업을 듣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1학년 로스쿨 학생들의 가장 큰 문제는 수업이 아니라, 아무도 로스쿨 시험을 실제로 쳐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생들이니만큼 대학교 성적이 A~A+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문제는 로스쿨에서 원하는 시험 답안지는 본인들이 전공 과정에서 A+를 받았던 방식으로 쓰는 답안지가 아니라는 것에 있다.
그래서 1학년 1학기에는 로스쿨이 원하는 답안이 어떤 것인지를 학생들에세 알려 주는데에 교수와 학교 모두가 시간을 쓴다. 내가 다닌 Osgood Hall Law School의 경우에는 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중간고사를 치르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주는 방식을 사용했다. 여러 과목 중에서 한 과목을 골라 중간고사를 보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개인별로 주어 기말 고사를 대비하게 하는 것이다.
교수 입장에서는 매우 큰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통 외부 강사가 맡는 수업 중 하나가 중간고사의 희생양이 된다. 하지만, 학생들 입장에서는 4-5과목 중에서 한 과목만 중간고사를 보면 되고, 못 봐도 성적에 들어가지 않으며, 게다가 로스쿨 시험이 어떤 답안을 요구하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좋은 기회였다.
내가 1학년 때에는 Tort라는 과목으로 중간고사를 보았다. 여기에 딱 맞아 떨어지는 한국의 법은 없다. 보통 국어로는 불법행위법으로 해석되는데, 그보다는 타인에 대해 마땅히 해야 할 배려를 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책임을 묻는 상황을 다루는 법이라고 보면 된다.
로스쿨 시험은 대부분의 경우 fact pattern이라고 불리는 가상의 상황이 문제로 주어지고, 그러면 그 상황에 적합한 법적 해석과 판단을 적는 방식으로 시험을 치게 되는데, 보통 과목당 3시간의 시험 시간이 주어진다. 무슨 시험을 3시간이나 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막상 시험을 쳐 보면 생각할 시간도, 쓸 시간도 모자란다. 나 같은 경우는 문제를 읽는 시간도 남들보다 더 드는데다가 사전도 영어나 불어로 된 사전만 허용하고 영한 사전은 쓸 수 없기 때문에 영어마저도 부담으로 안고 가야했다.
로스쿨 학점은 정말 철저하게 정규분포를 기준으로 상대평가를 하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답을 잘 써도 남이 더 잘쓰면 소용이 없다. 하지만, 학생들 취업을 생각할 때 너무 학점이 박하면 다른 로스쿨 학생들과 경쟁에서 밀리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매우 적은 수의 A와 D를, 그리고 아주 많은 수의 B를 주는 전략을 택한다. 그래서 B를 받으면 아, 내가 평균에서 왔다갔다 하는 정도구나... 하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성적을 검토하는 로펌에서도 B라면 뭐 특별히 못난 녀석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한다.
수려한 영어는 아니지만 그래도 1+1라는 질문에 2라는 답은 써 놓고 온 것 같아 내심 밤샘 공부의 보람을 느끼고 있던 중 결과가 나왔다. C.
너무 낮았다. A를 기대한 건 당연히 아니었지만, 반 이상이 받는다는 B는 받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그리고 교수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찾아갔다.
로펌에 근무하면서 외부 강사를 하시는 교수님이셨는데, 이름을 말씀드렸더니 내 시험지를 찾아 잠깐 훑어보시고는, 아, 이 답안지… 라며 뭔가 기억나는 듯한 표정을 지으시고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 답안지를 읽으면서 Science나 Nature에 나오는 논문을 읽는 줄 알았어”.
이과생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Science나 Nature에 논문 한 번 내는 것이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광인지. 노벨상을 탄 많은 연구들이 Nature와 Science를 거쳐갔다. DNA 이중 나선 구조에 대한 그 유명한 왓슨과 크릭의 노벨상 수상 연구 결과도 Nature에 실린 한 페이지짜리 논문이 아니었는가! 연구소에서도 언감생심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그 좁은 문을 로스쿨에 와서 통과하다니! 내 마음에 작은 기쁨의 물결이 스쳐갔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니 어, 그럼 왜 A+가 아니지 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의심가득한 눈초리로 교수님을 바라보며, 어눌한 영어로 그런데 왜... 점수가... 하고 머뭇머뭇 말씀을 드렸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거 칭찬 아니야”. 그리고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변호사는 고객을 고를 수가 없는 사람들이야. 도둑이 고객일 수도 있고, 도둑 맞은 사람이 고객일 수도 있어. 변호사는 정답을 미리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법과 법 해석을 찾아내는 사람이야. 그런데 이 답안지에는 한 쪽 입장만 고려가 되어 있어. 어떤 로스쿨 교수도 시험 문제를 낼 때 한 쪽 입장에만 유리한 상황을 주지는 않아. 서로 다른 두 입장에 유리한 법을 답안지에 모두 고려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해.”
다시 말하면 1+1은 2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법과 판례를 보면 3일 수도 있고, 다른 법과 판례를 보면 5일 수도 있으나 이 사건의 특징을 보아, 혹은 관련된 법과 판례의 적용을 고려할 때 8이다, 라는 답안을 달라는 것이다. 실제로 교수님이 공개한 A+ 답안지 두 개 중 하나는 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또 다른 하나는 피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려서 완전히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지만, 결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법을 어떻게 고려하고 적용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노벨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칭찬이 아니라니 실망스러웠다. 그렇지만 아, 그런 뜻이구나... 라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의 이과적 뇌는 정답찾기에 특화된 뇌였다. 1+1은 어느 경우에도 2여야 하는 것으로 각인된 나의 뇌는 기말고사에서도 유감없이 그 능력을 발휘해서 교수님들이 준 fact pattern을 읽어 나가는 동안 이미 한 쪽 방향으로 ”정답”을 작성해 놓고 있었다. 그 “정답” 을 타이핑하기도 바빴던 나는 가뜩이나 모자라는 시험 시간에 1+1이 3이나 8이되는 경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한국에서 내가 대학에 들어간 해에는 정치에 대한 반발로 전국적으로 기말 고사 거부의 바람이 불었었고, 그걸 교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신 교수님들의 판단으로 나와 동기들의 첫 학점은 처참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른 로스쿨에서 나의 첫 기말고사 성적은 모든 시험을 거부하고 받은 대학교 첫 기말고사 성적보다도 좋지 않았다.
나의 이과적 사고는 한국의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나의 장점이었다. 연구소에서도, 마케팅에서도 이과적 사고는 잘 통하는 편이었고 중요한 무기였다. 하지만, 자리를 바꾸니 이 무기가 오히려 단점이 되어 발목을 잡았다. 그 이과적 사고가 로스쿨적인 사고로 바뀌는 데에 꼬박 1년이 걸렸고 나는 두 학기 학점을 온전히 희생해야 했다.
내가 1학년을 살아 남아 2학년이 된 후 어느 날, 딸이 내게 불평을 했다. 아빠는 예전에는 이건 오빠가 잘 못했어, 이건 네가 오빠한테 사과해야 해 등등 오빠와 자기 사이의 문제를 딱딱 처리해 주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생각하면 오빠 말이 맞고, 이렇게 생각하면 네 말이 맞네... 라고 한다는 거다. 그 때 알았다. 나는 이제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