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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큰 그림

월간에세이 2025년 6월호

by 신광훈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10년이 지난 어느 날, 혼자 지내시던 어머니께서도 세상을 떠나셨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두 아들과 며느리들 몰래 떠나셨다. 어머니께서 혼자 돌아가실까 두려워 몇 번이나 요양원을 말씀드렸지만, “죽더라도 집에서 죽겠다"시던 어머니의 고집은 캐나다에 사는 내가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머니를 그렇게 보내드리고 다시 댁으로 돌아가 보니, 이부자리 근처에는 여기저기 약봉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약도 아니고 조제약인데, 도대체 무슨 약이 이렇게나 많을까.


캐나다는 의약품 처방이 까다롭다. 한국도 약 처방이 많이 까다로와 졌다고 하지만, 캐나다는 일반적으로 약을 처방 받기가 한국보다 더 어렵고 가격도 훨씬 비싸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 쓸 데가 있을까 싶어, 이름도 모르고 효능도 모르는 그 약들을 챙겼다. 그리고 그렇게 주섬주섬 챙긴 약봉지들과 함께 다시 캐나다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1년쯤 지났을까, 갑자기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 관절염인가 싶었지만, 전문의 만나기가 한국처럼 쉽지 않은 것이 캐나다인지라, 예약을 해도 석 달 뒤에나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하나 고민을 하던 중에 마침 관절염을 앓고 있는 한국의 지인이 캐나다로 휴가를 온다기에 복용하는 관절염 약을 좀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지인은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도, 관절염 약은 독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지인이 가져온 약을 본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 집 구석 어딘가에 두었던 어머니의 약봉지를 찾아 확인하니, 지인이 가져온 약과 같은 약이 있었다.


그래서 약 봉지를 꺼내어 다른 알약들 하나하나를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건… 관절염약, 이건… 이것도 관절염약, 이건.. 또 관절염약, 이것…도 관절염약. 소화제가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관절염약들이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큰 아들이 선심 쓰듯이 띄엄띄엄 전화해서 건강이 어떠시냐고 인사치레로 여쭤보면, “뭐, 나이들어서 관절이 좀 안 좋아 그렇지, 괜찮아”, 라고 별 것 아닌 것처럼 말씀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지인이 독하다고 조심하라던 관절염 약을 그렇게 종류별로 쌓아 놓고 드시지 않으면 거동이 힘드셨던 것이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왜 나는 그것을 몰랐을까? 명색이 큰 아들인 나는 멀리 있다는 핑계로 그걸 몰라도 되었던 걸까. 멀리서 그렇게 전화로 안부만 툭툭 던지듯 여쭤보면 되는 것이었을까. 괜찮다는 어머니 말을 핑계삼아, 잘 계시려니 하고 안심하고 있어도 되는 것이었을까.


이 감정이 후회라면, 참 억울한 후회였다. 늦었다는 이유로 아예 기회를 박탈당하다니 말이다. 돌이킬 길이 없고, 다음 기회도 없지 않은가. 효도는 부모님께서 살아 계실 때 해야 한다고, 돌아가신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늦는다고,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는데도 결국 늦고 말았다.


사람은 누군가의 기억에서 잊혀질 때에 비로소 죽는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어머니께서는 아들이 엄마를 더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셔서 이렇게 마음 아픈 기억을 주신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더 억울하다. 그래서 항의해 본다


왜 많이 힘들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냐고, 무릎이 많이 아프다고, 독한 관절염 약을 계속 먹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왜 말씀하시 않으셨느냐고, 말씀을 안 하시는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그러시면 안 됐다고 항의해 본다. 다음에는 잘 할 수 있다고 우겨도 본다.


내 항의에 어머니가 씩 웃으시면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이라고 뭐가 다르겠냐. 근데, 괜찮아.”


그건 그렇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이미 주신 2번의 기회를 놓쳤듯이, 아마 3번째 기회가 있었어도 나는 여전히 핑계투성이일 것이고,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또 용서하셨을 것이다. 어쩔 것인가. 이미 늦었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그러니 나도 그저 그 용서를 어머니의 손자, 손녀에게 흘려 보낼 밖에.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것이 손자, 손녀를 위한 어머니의 큰 그림이고 진정한 노림수는 아니었을까 싶다. 어차피 그 녀석들도 늦을 테니 말이다. 그 녀석들도 내 용서가 필요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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