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그리운 한 해의 끝자락
누군가 "술 한 잔 하자"고 제안할 때, 나는 소주를 떠올린다.
맥주 한 잔은 가볍다. 입 안을 가득 채우신 시원함과 함께 목을 넘어가는 상쾌함이 있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치킨을 먹으며 웃고 떠들 때 마시는 술이다. 위스키 한 잔은 여유롭다. 얼음이 천천히 녹아드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음미할 때 마시는 술이다.
하지만 소주는 다르다. 소주 한 잔에는 생활의 무게가 있다.
나에게, 그리고 아마 나와 같은 시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도, 소주는 단순한 알코올 음료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관계의 언어이고, 감정의 매개체이며, 때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들을 끄집어내는 열쇠 같은 존재다.
"소주 한 잔 하자"는 말 속에는 여러 의미가 층층이 쌓여 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오늘 좀 힘들었어", "네 생각이 듣고 싶어", "오랜만이야, 반가워"와 같은 마음들이 숨어 있다.
그래서 나는 무게가 있는 얘기를 할 때 맥주나 위스키 대신 소주를 찾는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 자녀와의 다툼, 가족에 대한 걱정, 미래에 대한 불안... 이런 이야기들은 치킨과 곁들이는 맥주로도, 치즈와 함께 음미하는 위스키로도 나누기 어렵다. 카페의 커피 한 잔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소주잔을 주고받으며 풀어내야 할 이야기들이다.
소주를 같이 마실 수 있는 사이라는 것은 특별하다. 그것은 서로의 취한 모습도, 진짜 속마음도, 때로는 추하게 보일 수 있는 모습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관계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소주를 마신다. 화려한 칵테일이나 고급 와인을 함께 마시기도 하지만, 결국은 소주가 빠질 수는 없다. 값싼 소주를 나누어 마시는 사이가 더 진짜 친구인 경우가 많은 건 내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소주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는 것은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었다는, 하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그런 신호다. 그 작은 잔 안에는 내 학창시절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쓰디쓴 맛 뒤에 찾아오는 은은한 단맛은, 소주의 맛이 아니라 함께 그 젊은 시절을 지나온 사람과 함께여서 느껴지는 맛인지도 모른다.
비록 1년에 한 번도 안 되는 기회지만, "소주 한 잔 하자"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말에 그들이 흔쾌히 응해주리라는 것, 그 기대만으로도 나는 오늘이 참 견딜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