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 사라진 세상, 어떤 아이로 남게 할 것인가

반복시키고 있습니까, 사색하게 하고 있습니까?

by 신광훈

AI에 대한 공포와 기대가 공존하는 시대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이고, 우리는 매일 새로운 AI 툴과 기능을 익히느라 바쁘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이 이미 바꾸어 놓은,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이미 적용되고 있는 '인재의 조건'에 관한 것이다.


1. 사라진 바닥

AI라는 강력한 도구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차별없이 주어졌으니 모두의 수준이 향상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을 보면 사람들 간의 격차는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살아도 유지되던 '평균'이라는 바닥이 있었다. 하지만 AI는 이 바닥을 없애버렸다. 성장 의욕이 있는 소수는 AI를 레버리지 삼아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반면, 의욕이 없는 다수는 AI에게 생각과 노동을 외주화하며 더욱 깊은 무기력의 늪으로 빠져든다.


이 격차를 만드는 가장 조용한 힘은 바로 '무기력'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스마트폰과 AI가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무기력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과제는 AI에게 맡기고, 자투리 시간의 심심함은 알고리즘의 추천을 따른다.


AI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 스스로 사색하고 문장을 적고 손발을 움직이는 '귀찮음'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도구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에 종속된 소비자로 전락한다. 귀찮음을 떠 안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 자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무기력해질 자유'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 무기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 답은 우리가 AI 시대를 대하는 방식, 정확히는 '최적화'라는 함정에 있다.


2. 최적화의 함정

최근 <흑백요리사> 11화 '무한 요리 지옥' 미션은 마치 AI 개발의 경쟁 구조를 축소해 놓은 실험실 같았다. 무제한의 재료와 충분한 시간, 그리고 단 하나의 최고 값만이 기록되는 규칙 등은 AI의 학습 방식인 '강화학습'과 흡사하다.


이런 규칙에서 AI는 빠르게 발전한다. 시간 이외에는 실패 비용이 거의 '0'에 수렴하는 이런 조건에서 AI는 무한한 반복을 통해 1점을 순식간에 50점으로 다시 90점으로 끌어올린다. 흑백요리사에서도 대다수의 참가자는 AI처럼 움직였다. 빠르게 만들고, 심사위원의 반응을 데이터 삼아 수정하고, 다시 내놓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최적화'에는 함정이 있다. 최적화는 본질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범위 안에서 정답을 찾기 때문에, '틀리지 않는 답'은 만들지언정 '남을 이기는 압도적인 답'은 만들어내기 어렵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반복은 숙련도를 높여줄지언정 깊이를 더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미션의 승리자는 무한한 반복이 아니라, 단 한 번의 요리에 180분을 오롯이 쏟아부은 최강록 셰프였다. 모두가 AI처럼 속도와 효율을 쫓을 때, 그는 사색과 기다림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비효율적인 몰입을 선택했다.


이것이 바로 답이 아닐까. AI 시대에 인간이 여전이 AI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더 빨리 더 많이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하지 못하는 '멈춤'과 '깊이'를 선택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은 무기력에 빠진 사람과 성장하는 사람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가 된다.


3. 불편함을 견디는 인재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인재상은 무엇일까? 코딩을 잘하거나 프롬프트를 기가 막히게 작성하는 기술적 역량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여전히 답을 내기는 어렵다.


어쩌면 이 시대 인재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불편함과 의욕을 관리하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AI는 확률 높은 길을 제시하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고, 0에서 1을 창조하는 것은 아직은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이 ‘몫’을 해 내기 위해서는 AI가 주는 달콤한 편리함을 거부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AI가 3초면 써주는 글을, 굳이 머리를 쥐어짜며 한 문장씩 적어 내려가는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콘텐츠를 끊고 심심함과 지루함을 견디며 사색하는 체력을 키워야 하고, 남들이 가성비를 따지며 반복할 때, 결과가 바로 보이지 않더라도 본질을 사색하고 깊이 파고드는 미련함이 필요하다.


느리고, 귀찮고,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것들 - 그렇게 전통적으로 인간과 그 문화를 성장시켜온 것들이 지금도 유용하다.


AI 시대에 끝까지 남는 사람은 무기력의 늪에서 벗어나 사색으로 스스로 길을 만드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람이고, 그들이 평균이 사라지는 세상의 진정한 인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을 돌아보고 물어야 할 때다. 지금, 반복의 가성비를 가르치고 있는지 아니면 사색의 귀찮음을 익히게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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