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기회가 될 때
혼자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로펌에는 파트너 변호사가 있다. 일반 회사로 말하면 회사의 이익과 손해에 따라 자신의 몫이 달라지는 주주와 같은 역할이다. 파트너 변호사는 그래서 로펌의 주인이다. 이런 변호사들을 equity partner라고 부른다. 대형 로펌에서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건, 모든 로스쿨 학생들의 꿈이고, 모든 associate lawyer들의 목표다.
요즘은 변호사가 늘어서 그런지 non-equity partner 제도를 도입하는 로펌도 많다. 파트너 직함을 주기는 하지만, 회사의 지분은 주지 않는 제도다. 회사 수익에 따라 수익을 나누는 경우도 있지만 associate lawyer처럼 월급제에 묶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파트너 변호사들을 income partner 라고도 부르는데, income partner를 거쳐서 equity partner가 되는 시스템을 가진 로펌도 있다.
하지만, equity partner 든, income partner든 파트너 변호사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이름있는 로펌일 수록 더욱 그렇다. 파트너 변호사들의 권한은 막강하고, 로스쿨 학생을 나중에 변호사로 채용할지에 대한 영향력도 크다.
그래서 처음 로펌에서 인턴으로 일을 시작한 로스쿨 학생들 중 대다수가 "파트너 울렁증이 생겼다" 고 호소한다.
맡긴 일을 잘못하거나 대화 중 실수할까 봐, 그 결과로 점수를 따기보다 점수를 잃을까 두려워 파트너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인사에 개입할 권한이 있는 사람과 자주 마주쳐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것 아니냐도 반문할 수 있겠지만, 원하는 로펌에 변호사로 채용되는 것이 워낙 중요하고, 첫 번 기회에 채용되지 않으면 새 직장을 찾는데에 여러 달이 걸리거나 더 작은 로펌에 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은 파트너 변호사에게 점수를 따는 것보다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나도 그랬다. 특히 일상 생활에서는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내 영어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일상 대화를 영어로 진행하는 건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파트너 변호사에게는 나의 영어를 들키고 싶지 않았다. 파트너 울렁증의 일종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일하던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들이 대차대조표나 마케팅이나 제약 시장 등에 대한 이해가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거였다. 대부분 대학을 나오고, 바로 로스쿨에 입학하고, 바로 로펌에 입사한 후에 변호사로만 생활한 사람들이다보니 재무제표나 마케팅에 대한 지식도, 감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전지전능하게 느껴졌던 대부분의 파트너 변호사들이지만 생각해보니 나보다 나이도 어렸다.
우습지만, 그 때부터 용기가 생겼다. 그래서 틈만나면 나의 다른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내 전공 특성상 생물과 화학 분야를 다 다룰 수 있다는 점, 국어는 모국어이고 일본어도 1급 자격증이 있다는 점 등 나와 동기들의 차별점 (실제로 그게 로펌에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을 피력하고, 업무 경력을 살려서 회사의 마케팅 자료에 대한 의견을 담당 변호사에게 전달하는 등 시키지도 않은 일에 열심히 내 지식을 보여 주기 위해 노력했다.
나중에 변호사로 채용이 되고 나서 들은 이야기이지만, 인사팀에서 채용 결정을 위해 인턴들에 대한 피드백을 달라고 변호사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이런 종류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우리 로펌에 없으니, 이런 사람을 우리 로펌이 가지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의견을 준 파트너들이 있다고 했다.
요즘 MZ새대들은 전화도 꺼려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로스쿨 학생들을 만나면 예전보다 더 심해 보이는 파트너 울렁증을 토로한다. 그 때마다 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울렁증이 있다는 건 좋은 신호예요. 넘을 필요 없는 벽에는 울렁증이 생기지 않죠. 높아 보이지만 반드시 넘어야 할 벽 앞에서만 울렁증이 생깁니다. 그건 도전해야 할 목표를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도전해서 넘어서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파트너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해도 채용되는 경우는 물론 많지만, 파트너 울렁증을 극복하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긴다.
울렁증은 나의 기회를 감각적으로 알려주는 최고의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