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것은 지난 번과 무엇이 다른가?
작년 여름에 3개월 정도 일했던 인턴이 있었는데, 어느 날 보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탕비실 캐비넷을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었다. 개인의 역할 외의 일은 잘 하지 않는 북미 문화에서는 보기 드문, 참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 씀씀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커피 필터를 정리하면서 마치 그릇처럼 엎어서 정리해 둔 것이다. 캐비넷에 있는 그릇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게 엎어두면서, '무언가를 담는 용기'라는 형태에 집중해 커피 필터도 그와 똑같이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커피 필터의 본질은 그릇과 정반대의 논리로 움직인다.
그릇은 음식을 위로 받아 위로 내어주니 안쪽이 깨끗해야 하지만, 커피 필터는 물을 위로 받아 아래로 흘려보내니 바깥쪽, 즉 아래로 향하는 부분이 깨끗해야 합니다. 겉모습은 비슷할지 몰라도, 쓰임의 본질은 완전히 다른 셈이다.
모든 케이스는 다르다는 생각
이 일로 '일의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비슷한 서류를 작성하고, 비슷한 절차를 밟고, 비슷한 회의에 참석하며 살아가지만 한 걸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어제와 오늘이 완벽히 같은 경우는 단 하나도 없고 똑같은 업무도, 똑같은 경영도 없다. 똑같은 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바둑처럼, 모든 업무에는 저마다의 미세한 차이가 숨어 있다.
문제는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습관'이라는 자동 항법 장치에 맡겨버릴 때 발생한다. 익숙함에 기댄 채 무심코 일을 처리하다 보면, 결과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릴 수 있는 그 작은 차이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복사기의 회색 줄
익숙함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경우는 많아. 회사 생활을 하던 중에 나는 출력물에 나타나는 희미한 회색 줄을 '오래된 복사기의 고질병'이라며 무심코 넘겼다. 어제도, 지난 주에도, 지난 달에도 늘 있던 일이라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 온 직원은 달랐다. 복사물에 선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던 그 친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코올 솜으로 이 곳 저곳을 닦았고, 그렇게 그 회색 선은 없어졌다.
차이는 '인식'에 있었다. 나는 '원래 그런가 보다'라며 관성에 몸을 맡겼고, 다른 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작은 균열에 집중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고 상황을 개선한 것은 후자였다.
성장의 발목을 잡는 습관
"좋은 습관이 성공을 만든다"는 말은 진리다. 잘 만들어진 습관은 우리 삶에 안정적인 루틴을 선물하고, 예측 가능한 성과를 보장한다.
하지만 그 습관이 '생각 없는 반복'으로 전락하는 순간, 성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커피 필터를 그릇이라 착각하고, 복사기의 회색 줄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이 모든 것이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진 결과다.
그래서 이 질문을 항상 눈과 입과 머리에 달고 살아야 한다.
"이번 것은 지난번과 무엇이 다른가?"
이 질문을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차이를 포착하는 순간, 평범한 일에서도 비범한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커피 필터, 복사기,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업무까지. 본질은 같다. 겉보기엔 늘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반드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결정적 차이가 숨어 있다.
결국 성장의 문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번 것은 지난번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질문 하나에 달려 있다. 그 질문을 놓치지 않는 순간, 평범한 일상은 남다른 성과로 바뀐다
습관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이끌지만, 생각 없는 습관은 우리를 현재에 가두어 버린다. 오늘도 내 하루 속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회색 줄이 있을 것이다. 나의 익숙한 하루하루에서 무심코 지나치던 회색 줄은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나의 내일을 바꿀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