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무언가인 '척'하며 진짜가 된다
최근 종영된 <흑백요리사 시즌2> 결승전에서 최강록 셰프가 자신은 조림을 잘하는 척 했을 뿐이라 고백했다. 그동안 '조림의 대가'로 불리던 그가, 사실은 조림을 잘하는 '척' 했을 뿐이라니. 예전에 마스터셰프 코리아에서도 수많은 조림 요리로 우승을 거머쥐었던 그가 아니던가. 나 뿐만 아니라 화면을 지켜보던 많은 이들이 놀랐을 것이다.
아마 최강록 셰프 자신으로서도 꺼내기 힘든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의외의 고백에서 뜻밖의 큰 배움을 얻었다.
우리는 흔히 '척'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없는데 있는 척, 모르는데 아는 척, 못하는데 잘 하는 척 하는 것을 진정성 없는 가식, 남에게 보이기 위한 허세, 자신을 속이는 거짓이라고 여긴다. 나 역시 가식적으로 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최강록의 이야기를 곱씹으며 깨달았다.
'척'하는 것에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제대로 ‘척’하기 위한 과정에서도 우리는 성장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척'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다른 영상을 찾아보니, 조림을 잘하는 척하기 위해 최강록 셰프는 참 많이도 조림을 연구한 듯 하고, 한 가지 요리를 100번 하면 잘하게 된다는 말을 하는 영상도 보았다. 같은 요리를 100번이라니. 양념장의 농도, 불 조절의 타이밍, 재료의 궁합…. '척'하기 위해서 그는 역설적으로 '진짜 실력'을 쌓아야 했다. 남들에게 조림을 잘 하는 척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조림을 잘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남에게도 통하는 '척'의 역설이다. 제대로 척하기 위해서는 진짜가 되어야 한다. 아는 척하려면 정말 공부해야 하고, 유능한 척하려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습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투명하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척’하는 것은 금방 탄로난다. 그러니 제대로 척하는 것은 게으름과 양립할 수 없고, 오히려 더 치열하고 고독한 노력을 요구한다.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다. 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척했던 나는 전날 밤을 새워가며 연습을 했고, 외국어를 잘 하는 척 했던 나는 그날부터 매일 저녁을 굶고 학원으로 향했었다.
내가 아닌 모습으로도 자라나는 가치
최강록 셰프는 조림이 자신의 진심이 아니었음을 고백했지만, 그가 '척'하기 위해 쌓아온 조림 실력 자체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백한 그의 자산이다. 비록 타인의 인정이나 욕망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과 경험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요즘은 '진짜 나'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관념처럼 우리를 따라다닌다. 미디어에서는 진짜 자아를 찾으라고 끊임없이 다그친다. 하지만 현실에서 순수한 본연의 '나'만으로 살아가기는 어렵다. 때로는 직장이 요구하는 나, 가족이 기대하는 나, 사회가 원하는 나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그 '척하기'의 과정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능력을 키운다.
역설적이게도, 하기 싫었던 일을 억지로 하다 보면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시작한 조림이 최강록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선물했듯이, 우리가 마지못해 떠맡은 일들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가능성이 싹튼다. 승진을 위해 마지못해 배운 기술이 결국 자신만의 무기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시작한 취미가 진짜 열정으로 바뀌기도 하는 사례는 주위에 흔하다.
하기 싫은 일을 성실하게 해내는 과정 자체가, 결국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만들어주는지도 모른다.
척하기와 진심 사이의 줄타기
그렇다고 평생 가면을 쓰고 살라는 뜻은 아니다. 최강록 셰프의 고백이 울림을 준 진짜 이유는, 그가 결국 자신의 진심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요리'를 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조림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용기를 냈다.
중요한 건 균형이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가 '척'하며 사는 것을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내가 지금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진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지를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현명한 선택 아닐까.
그러니 당신이 지금 무언가인 '척'하며 살고 있다 해도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만 이 질문만은 잊지 말자.
"지금의 척하기가 나를 성장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소모시키고 있는가?"
최강록 셰프는 조림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도 아니고, 자신의 조림이 최고도 아님을 고백하며 '척'의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앞으로도 나는 아내에게는 좋은 남편인 척 하고, 딸에게 좋은 아빠인 척 하고, 고객에게는 좋은 변호사인 척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매일 실제로 그렇게 되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 척하며 살지 않는가. 가식과 진심 사이, 그 어딘가에서 조금씩 진심 쪽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