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를 부른 그 한 마디

말을 그렇게 한 것 뿐인데요

by 신광훈

어느 신입사원의 사퇴


캐나다는 취업을 한 후 1년이 지나야 공식적으로 10일의 유급 휴가 가 주어진다. 물론 병가도 있고 1년이 되기 전이라도 회사와의 합의를 통해 무급 혹은 유급으로 휴가를 갈 수 는 있지만, 그건 비공식적인 경로다.


취업한 지 2달 정도 된 신입 사원이 급히 한국에 다녀올 집안 일이 생겨서 흔쾌히 3주의 유급 휴가를 허용해 주었다. 그런데, 3달쯤 지나서 다시 한 번 2주의 휴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혹시 예전의 그 가족의 건강이 다시 나빠졌나 했는데, 그게 아니라 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조금 휴가가 과하다 싶었지만, 나쁜 목적은 아니라 업무에만 지장이 없으면 가능하면 승인해 주고 싶었으나 하필이면 다른 직원의 휴가와 겹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렵겠다고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회사를 못 다녀도 이 선교 활동은 가고 싶어요”


휴가를 주지 않으면 사표를 쓰겠다는 말로 이해하고, 시간을 들여서 고민했다. 능력있는 직원인데. 2주 휴가와 바꾸기는 아까운 직원이었지만,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 원하는 휴가를 주지 않으면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는 그 말.


고민 끝에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로 하고 합의 하에 사표를 받았다. 사표의 위협에 휴가를 승인하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그 직원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꼭 가고 싶은 선교라서 말을 그렇게 한 것 뿐이라고 했다. 나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말을 그렇게 한 것 뿐이라니.


그 직원은 가벼운 말 한마디가 불러온 결과 치고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홧김에 내뱉은 말 한마디가 직장이 아니라 생명까지 앗아간 경우도 있다. 1825년 러시아의 그날처럼 말이다.


운명을 가른 한마디


1825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데카브리스트 반란은 3일 만에 진압되었고, 주동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인 시인 콘드라티 릴레이에프는 형장에서 기적을 경험했다 – 그의 목에 걸린 밧줄이 끊어진 것이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사형 집행 중 밧줄이 끊어지면 신의 뜻으로 여겨 사면하는 것이 관례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릴레이에프는 이렇게 외쳤다.


"이 밧줄을 보라! 러시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군중을 향해 외친 그의 조롱 섞인 말은 러시아 황제인 니콜라이 1세의 귀에 들어갔고, 황제는 분노했다. 그래서 관례에 따라 이미 서명을 마친 서명장을 다시 가지고 오라 해서 사면장을 찢어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라”


릴레이에프는 다음 날 다시 교수대에 섰고, 이번에는 밧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말이 만드는 현실


릴레이에프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회를 앗아간 것은 다름 아닌 그의 말이었다. 만약 그가 밧줄이 끊어졌을 때 "신께서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라고 말했다면 황제는 아마도 사면장을 찢지 않았을 것이고, 그는 삶을 얻은 것에 더불어 순교자가 아닌 살아있는 혁명가로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말에는 힘이 있다. 특히 중요한 순간, 위기의 순간일수록 말을 조심해야 한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 억울하다고 느낄 때, 쟁취해야 할 때, 모욕감을 느낄 때 내뱉는 한마디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 직원 역시 정말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그저 자신의 간절함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수를 뒀을 뿐이라는 것은 안타깝다. 그저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진심은 아니었다는 변명은, 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는 직업을 잃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나는 좋은 직원을 잃고 새로운 직원 교육에 시간과 돈을 썼다.


이는 비단 그 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 종종 감정에 휩쓸려 내뱉은 말 한마디가 어떤 무게를 지니는지 잊곤 한다.


오늘 우리가 할 말


힘든 협상 테이블, 긴장된 면접장, 혹은 사소한 갈등의 순간. 그 찰나에 내가 선택한 단어가 나를 벼랑 끝으로 밀 수도, 혹은 뜻밖의 기회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릴레이에프는 자신의 말로 생명을 잃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말로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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