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낼지 아니 '힘들지 말지는 내가 결정해!'

한국을 정리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지 일 년...

by oasis


언니가 형부와 연애를 할 때 형부 집에 놀러 가면 책을 바꾸어 볼 수 있고 추천할 수 있는 형부의 어머니가 너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혜로우시고, 배울 것이 많고 같이 있으면 밝은 에너지를 쉬지 않고 발산하시는 보기 드문 어른이시다. 내가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 며칠이 지났을 때 사부인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다.

"이모!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한국은 많은 것들이 빨리 변해요. 여긴 유행이 빠르고 너무 많은 것들을 선전해서 마치 뭔가를 꼭 선택해야 하는 것처럼 보여요.

까! 딱! 하면 그것들을 가지지 못해 불행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게 사실이 아닌데, 나같은 어른도 그런 가짜 행복에 속을 수 있어요.

그러니 젊은이들은 오죽해요. 인생은 좋은 것을 가져야 행복한 게 아닌데 한국사회가 그렇게 만드는 거 같아요. 이제 한국에서 살아야 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국은 불행하다고 느끼기 너무 쉬운 사회가 되었어요...”


당시 사부인의 말씀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80이 넘으셨는데 "나 ** 여대 나온 여자야" 하는 학교를 나오셨다.

주변에서 본 좀 배웠다 하는 기득권 어른들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시다.

사부인은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움이 없으시다. 그러나 평소 본인 말씀처럼 물질에 있어 검소하시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하시며 사신다. 한국에 있는 몇 년 동안 나에게 데이트하자며 나만 불러내어 인기 좋은 유명한 맛집에서 밥을 사주시곤 하셨다.


별것을 묻지도 않으시고,

그때처럼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것도 아니고 그냥 친구처럼

"어떻게 이 반찬을 만들었을까? 뭘 넣었을까?"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셨다.


나의 힘들었던 사회생활을 가족 어느 누구, 친언니와 형부에게도

내색한 적 없어서 사부인께서도 알턱이 없으셨지만,

사부인께선 날 보면 자주 여자가 사회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냐며 대견해하시고

사회생활 안 해본 언니가 알아주겠냐, 술 좋아하는 철없는 형부가 알아주겠냐 하시며 아무 말하지 않는 나에게 매번 세뱃돈과 성탄선물로 현금을 봉투가 열리도록 찔러 주시고 종종 데이트를 신청하셨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은 토가 나오게 힘들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해 본 적 없는 나의 첫 직장, 대학교 시간강사.

나보다 나이가 약 20년이상 많은 유부남 학과장이 첫 달부터 사귀자 했고 거리를 두는 날 5년간 괴롭혔다. 나에게 자존심이 상했는지 밤이면 술에 취한 척 전화를 해서 1-2시간 동안 욕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첫 달부터 잘 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4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도 하지 못했다.

엄격했던 엄마 덕분에 …모든 잘못을 나에게서 찾으려 했다.

더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하고 최선을 다해 가르치면 괜찮아지는 건 줄 알았다.

참고 견뎌야 성공하고 교수가 된다고 생각했다. 상사의 모진 지랄도 다 참아내야만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때였다.


작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올 때 친한 친구 몇 명 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헤어지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해답 없는 참견이 싫어 침묵하기도 했다. 엄마 아빠에게도 미국 들어오기 2주 전에 통보를 했다.


미국 오기 3일 전,

미국 가는 것을 어디서 들었는지 알게 된 한 언니의 끊임없는 요청에 집 근처에서 만났다. 그리고 결국엔 듣고 말았다.

"왜가? 진짜가? 어떻게든 버티지! 미국에 뭐 대단한 거 있는 거 아니야?

비자는 어떻게 받았어? 여기서 뭐라도 해야지! 다시 생각해 봐. 가서 뭐 할 건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 지금까지 버틴 시간이 아깝지 않아?

같이 여기서 뭐라도 해 보자!!”

‘……….’


내가 속으로 했던 고민들의 일부를 쉬지 않고 떠들어 됐다.

내가 미국을 가는 것이 맞는 결정일까...? 그 날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비행기 타는 날 아침, 공항에서 사부인께 전화를 드렸다.

비자가 갑자기 나와 처리할 일이 많아 미처 직접 만나 인사를 드리지 못했었다.


내 전화에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이모! 너무 멋진 사람이에요!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기 힘들어요.

이모가 얼마나 부럽고 멋지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이미 난 사부인의 첫마디에 눈물 콧물.... 아이라도 남겨두고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 가는 사람 마냥......)

난 이모가 너무 부러운걸! 엄마도 이모를 이해하기 힘들지 몰라요. 근데 이모 인생은 이모가 살아가는 거예요.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떠날 수 있다는 건 보통의 용기가 아니에요.

이모는 너무 멋진 사람이에요.

이모는 어디서든 잘 살 거라는 걸 내가 알아요. 인생에서 힘든 건 없어요. 힘들다 생각하면 힘든 거예요. 그냥 오늘을 성실히 즐겁게 살아가면 돼요.

난 애들 아빠가 먼저 떠났을 때 남들의 많은 위로를 받았지만, 남들의 위로가 필요할 만큼 그렇게 힘들지 않았아요. 힘들다고 생각하면 힘든 거고, 아이들을 키우는데 집중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난 애들 아빠가 먼저 가고 아이들 키울 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이들 커가는 게 매일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정말 그랬어요.

어차피 오늘 하루 아무리 힘들어한다고 해도 오늘 하루 안에 내가 힘들었던 만큼 일이 해결되지 않아요.

그냥 그 일들은 그 일이고 난 오늘을 즐겁게 살아가면 돼요.

집중은 필요한 곳에 하면 돼요.

이모는 할 수 있어요.

이모... 이모는........."


그렇게 30분 가까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다.

형부의 아버지는 국내 유명한 정신과 의사셨는데 형부가 중학생이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 어린 남동생을 남겨두고..

난 통화하는 내내 전화기를 붙들고 공항 라운지에서 울었다. 거의 통곡을 했던 거 같다.

사부인께서는 힘들다고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뿐이지 힘드셨던거다.

아니라면 어떻게 나를 저렇게 잘 위로해 주실 수 있으셨을까?


후회는 없다.

더 일찍 들어올걸.... 이 부분은 미치도록 후회가 된다.

왜 버텼을까?

왜 버텨야 성공이고, 그게 행복의 길이라 생각했을까?

미국에 들어온 지 일 년 하고 두 달이 되어간다.

후회는 없지만 솔직히 두렵기도 하다..


오늘 사부인께서 해 주셨던 말씀을

다시 꺼내 본다..

앞으로 '.... 집중은 필요한 곳에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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