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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자 Oct 11. 2024

전라도와 경상도에서의 유년기

5.18과 지역감정

나는 전라남도 벌교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예전부터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깡패가 많았던 동네라고 한다. 벌교는 문학적으로도 알려진 지역인데,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며, 그 시절의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상징하는 곳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우리 집은 인근에서 가장 큰 도매상을 운영했는데, 부모님은 주기적으로 서울이나 광주에 직접 가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 오셨다. 나는 어린 시절 정치나 사회 문제에 대해 깊이 알지 못했지만, 동네 어른들은 "똑똑한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어야 전라도가 발전할 수 있고, 전라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나 불이익이 없어질 수 있다"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을 때,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그날 부모님은 광주 거래처에 물건을 사러 가셨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되었다. 당시 광주는 시위와 군부의 진압으로 인해 대중교통이 마비되었고, 부모님은 겨우 교외로 나가 가까스로 교통편을 찾아 집으로 돌아오실 수 있었다. 


시위대는 광주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이동하며 항쟁을 이어갔고, 어느 날 우리 동네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시위하며 지나갔다. 나는 호기심에 그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밖은 위험하다"며 나를 집에 머물게 했다. 동네 아이 중 몇 명은 시위대를 따라가다 경찰에 붙잡혔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 아이들은 경찰서에서 간단한 훈방 조치를 받고 풀려났지만, 그때 나는 아이들도 경찰에 잡혀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처음 느꼈다. 동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시위를 했는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몇 년 후, 아버지는 운영하던 도매상을 접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셨다. 대기업들이 유통망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도매상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공무원이 되어 첫 근무지로 선택한 곳은 경상남도 진주였다. 그곳은 우리 고향에서 멀지 않으면서도 교육 환경이 좋았고, 무엇보다 명문 고등학교들이 많았다. 진주는 매년 여러 학교에서 서울대 입학생이 30명 이상 배출될 정도로 교육 수준이 높았다.


진주는 벌교보다 훨씬 큰 도시였고,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나는 진주로 전학을 갔는데, 전라도에서 온 유일한 학생이었다. 진주와 벌교는 거리상 그리 멀지 않았지만, 사투리는 전혀 달랐다. 진주 사투리의 발음과 억양을 처음에는 거의 알아듣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둬”라는 표현은 한참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는데, 물건을 달라는 뜻이었다. 내 동생들은 경상도 사투리를 금방 배우고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렸지만, 나는 경상도 사투리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 끝까지 배우지도 쓰지도 않았다.


1980년대 중후반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 선언이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3김 시대라고 불리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의 지역감정은 극에 달했다. 특히, 김영삼과 김대중 사이의 대통령 후보 단일화 문제로 경상도 사람들과 전라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그 시절 나는 경상도에 살면서 지역감정을 직접 경험했다. 선거철만 되면 학교에서 유일한 전라도 출신 학생인 나에게 시비를 거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나에게 "너는 해태 과자만 사 먹느냐?", "너네 집에서 김대중 찍느냐?", "전라도로 돌아가라!"는 등의 말을 하며 괴롭혔다. 하루는 얼굴도 잘 모르는 옆 반 아이에게 갑자기 이유 없이 맞기도 했다. 사춘기 시절, 나는 이러한 정치적 증오와 차별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빨리 서울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진주를 떠났다. 전라도에서만 살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지역감정 체험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지인들은 나에게 인내심이 강하다고 자주 이야기하는데, 아마도 중고등학교 시절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했던 경험들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의 지역감정이 적어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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