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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역마자 Oct 18. 2024

인생 첫 실연

잘못된 만남

대학교 신입생 시절의 나는 전공과목보다 동아리 활동에 더 관심이 많았다. 특히, 클래식 기타를 전공으로 삼을까 고민할 정도로 기타에 빠져 있었다.


당시 기타 동아리에서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가 있었다. 한 명은 나와 가까운 동네에 살던 잘생긴 남학생이었고, 다른 한 명은 음악을 전공하는 여학생이었다. 우리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가까워졌고, 특히 나는 그 여학생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 날, 그 남학생이 나에게 묻기 시작했다. "너 XX 어떻게 생각해? 너희 둘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사귀어보는 건 어때?" 사실 나도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음악을 전공하는 그녀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음대생은 사치스럽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둘이 따로 만나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녀와 나는 영화 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주말이면 종로로 나가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곤 했다. 당시에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여러 영화관을 오가며 연달아 영화를 보기도 하였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편의 영화를 보기도 했다. 특히, 당시 같이 보았던 디즈니의 '인어 공주'에 대한 기억은 특히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영화 속 음악은 아름다웠고,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인어 공주 포스터

그 시절 한국에는 맥도널드와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같은 패스트푸드점이 막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패스트푸드를 무척 좋아했다. 인생 처음으로 맛본 패스트푸드는 나에게 천국의 맛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런 그녀와의 시간들이 행복했다. 우리는 자주 그런 곳에서 식사를 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 절친인 남학생이 갑자기 나에게 놀라운 말을 했다. "나 XX랑 사귀고 있어. 그래서 너희 둘이 자주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나는 처음에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은 농담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그녀에게 직접 물어보니, 그녀도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나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 그녀에게 물었다. "남자친구가 있는데 왜 나와 계속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어?" 그녀는 친구끼리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대답했지만,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나는 이틀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방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동안의 그녀와 사귀고 있었다는 것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 모른다는 자책과 부끄러움, 그들이 나를 속였을지도 모른다는 배신감이 뒤섞이며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었다. 내 인생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슬픈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며칠 후, 나는 운명처럼 군대 입대 영장을 받았다. 원래는 2학년을 마치고 가거나, 졸업 후 방위 산업체 근무도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빨리 군대를 가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대를 결심한 나는 소집일에 맞춰 의정부 보충대로 갔다. 그들과의 아픈 기억은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점차 희미해졌고, 나는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갔다.


제대 후 그들이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와 함께했던 기억들은 이제 그저 젊은 날의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그저 흔한 연애의 해프닝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경험을 농담처럼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해졌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정말 힘든 시기였다. 젊은 시절의 사랑, 기쁨, 그리고 상처, 그 모두가 그저 아련한 추억들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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