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상 중년심리 Jan 20. 2024

중년 남성의 은밀한 욕구, 여성과 성에 대한 집착

중년기는 인생에 마지막으로 불타오르는 욕정의 시기일까?

 몇 해 전 친구 두명과 처음 만난 여성 세분과 6명이 1박 2일 골프여행을 갔다. 친구가 번개로 주선한 여행인데, 실제 골프는 치지 않았지만 1박 2일을 룸이 세 개인 근사하고 널찍한 콘도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와인도 마시고 기타도 치고 노래방도 가고 새벽까지 놀았다. 우연하게  여행에 끼어들었는데 대학시절 MT로 돌아간 기분으로 뜻밖에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여성 3분은 집에 있는 남편을 의식해서인지 여성 3 분끼리 골프채를 가지고 사진을 계속 찍고 남편에게 카톡으로 계속 보낸다.


 유적 답사 모임에 친구들과 같이 가기로 했는데 두 친구가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1박 2일 동안 같이 유적도 답사하고 술도 마셨지만 콘도 2개 얻어서 남녀 간 따로 잠을 잤다. 그 여성 두 분도 계속 남편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보낸다.



 의외지만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된 중년 남성은 주로 성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애인이 있는 친구는 자랑을 하고, 다른 친구는 부럽다며 자기도 다른 여성을 소개해 달라고 한다. 내 주변에 이러한 사례를 많이 보았다. 다행히 내가 간 두 번의  여성과의 모임에서 친구들은 육체관계를 맺지 않고 정서적으로만 교감하는 것 같아 보였다.


 시간이 지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 모임 다 심리적인 불륜이다. 육체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정서적으로는 불륜이고 이런 관계가 계속되면 육체관계까지 갈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중년기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지고 사회적인 지위도 획득하게 되어 모든 것들이 편안해지고, 이제 가정으로 돌아가 아내와 같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하는데 실제는 그렇지 못했다. 여성이 50대에 갱년기에 이르면 육체적인 관계에 관심이 없게 된다. 그리고 남성도 아내에 대해서 여성으로 느끼지 못하고, 아내에게 성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 관심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외부 여성에게 간다. 단순하게 관심이 가는 것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불륜을 원하고, 더 나아가 남성은 아내에게 받지 못한 정서적인 따뜻함과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가까운 후배가 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내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야, 네 나이가 60대야. 60대에 만일 바람을 피우다가 아내가 알게 되면 너는 이혼이다. 그러면 너는 아내와 아이들과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네가 그동안 3~40년 동안 이뤄왔던 모든 것들을 다 잃게 되는데 너는 왜 아직도 애인에 대해 집착하니?” 


 후배의 답변은 의외였다. “선배님 얼마나 짜릿한지 모르시죠. 흥분이 됩니다. 이 흥분이 없으면 살 에너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무슨 속마음을 이야기하겠습니까. 그냥 한 집에 사는 동거인이죠. 그런데 애인에게는 내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애인은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 줍니다. 나는 애인과 있을 때 살 맛나고 너무 행복합니다.”



 중년의 남성들이 육체적인 불륜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애인을 만들고 싶어 할까?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심리학을 공부한 나로서는 대상 관계론으로 이해하고 싶다.


 대상 관계론은 영국의 멜라닌 클라인이 인간의 심리구조를 인간상호적인 관계에서 바라본 현대적 정신분석이론이다. 즉 유년 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대상에 대한 관계성이 평생토록 지속된다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어릴 때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던 사람은 평생 동안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에게 사랑을 준다고 생각하고, 어릴 때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동안 모성애 사랑을 갈구한다고 한다. 



 지금 중년남성의 유년 시절은 산업화 시절로서 먹고사는 것이 가장 문제가 되는 시기였다. 까마득한 이야기지만 그때는 춘궁기 보리 고개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싸 온 아이들은 반밖에 되지 않았다. 나머지 반은 운동장에 나가서 수돗물을 마시며 배를 채웠다. 


 그 시대의 부모님들은 자녀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일단 돈을 벌어서 먹고살아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 부모들은 장사를 하든 또는 농사를 짓든 아이들을 방치했다. 그리고 그때는 6.25 전쟁 이후 베이머부머 붐이 불어서 통상적으로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의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돌볼 여유도 없었고 또 아이들도 많아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따뜻하게 사랑해 줄 수도 없었다.


 유년 시절에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갈급했을까? 그런데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는 직장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출근해서 일한 적이 많았다. 아이들을 돌볼 여유도 없고 아내와 따뜻하게 교감할 시간도 없었다. 각박하고 빡빡한 삷이었다.



 나이가 들어 중년기에 들어섰다. 중년기에 들어서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사회적인 지위도 생긴다. 그런데 그동안 내가 부양했다고 생각했던 아내와 아이들은 내 도움없이 스스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을 한다. 내가 경제적으로 부양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그동안 외롭게 살았고 남편은 우리를 방치했다고 비난한다. 

 중년 남성들은 오갈 데가 없다. 이제 중년기가 되어 직장을 잃을 시기가 오면 아내와 가정으로 돌아가야 되는데, 아내와 아이들은 나를 반기지 않는다. 선배말을 들어보면 투명인간 취급당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리고 이제 직장생횔도 멀지 않았다. 내 삶의 모든 것인 직장도 끝이다. 은퇴한 선배들의 무료한 삶이 눈에 보인다. 은퇴 뒤의 삶이 혼란스럽고 두렵다.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데,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아내와 정서적으로 멀어진지 이미 오래다. 


 누구와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여성을 만나 보면 내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준다. 몇 마디 위로가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오면서 잃어버렸던 젊은 시절의 설렘과 흥분도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