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야만 가치 있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로 괜찮은 나를 발견한다
중년기를 넘어 은퇴하고 나서도 계속 일을 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다. 시지프스의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처럼, 숙명처럼 평생 일해야 내가 살아있다는 보람을 느낀다.
(시지프스의 신화: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죄로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는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형벌을 영원히 반복한다. 바위가 봉우리에 다다르면 산 아래로 떨어진다. 그리고 무한히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린다.)
나는 사진을 취미로 4년 동안 공부하고 있는데, 사진에 진심인 동호회 회원들이 많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면서 중년기부터 사진을 취미로 시작해서 10년쯤 되었다. 사진을 이해할수록 장비를 하나하나 더 구입하기 시작하는데, 좋은 카메라 바디가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이고, 망원렌즈, 광각렌즈 등 렌즈값은 1,000만 원이 넘는다. 모니터도 실제 인화할 때와 똑같은 화질을 구현하려면 최소 200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 거기다가 작가용 프린터를 구입하면 최소한 500만 원 이상은 들어간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장비 값만 몇천만 원 이상 쓰게 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는 사진으로 생계를 유지하느냐이다. 프로 사진작가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치열한 경쟁을 겪으며, 국내에서도 아주 특별한 사진 포트폴리오를 20년 이상 차근차근 쌓아야 일반에게 사진이 팔린다.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로 10년 정도 사진을 했다 하더라도 사진이 판매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유명 갤러리의 컬렉터가 사진을 구입해주어야 하는데, 취미로 시작한 아마추어의 작품을 구입해줄 리 없다.
왜 이렇게 무모하게 은퇴 자금을 단순한 취미에 지불하며 몰두하는 것일까?
끝없는 노동의 강박
A는 중년기 이후에도 계속 돈을 벌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친구다. 은퇴할 때의 자산을 죽을 때까지 보유하겠다는 목적으로, 은퇴 뒤에도 생활비를 돈을 벌어서 충당하려 한다. 그런데 은퇴 후 평생 일한 직장을 떠나서 다른 분야에서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돈은 쉽게 벌리지 않아서 정말 기를 쓰고 일을 찾아야 한다. 중소기업의 감사 자리를 찾아서 근무하는데, 감사는 법률적으로 리스크가 많은 자리다. 자칫 감사 역할로 소송을 당하게 되면 평생 모은 돈을 소송으로 날릴 수도 있다.
물론 평생 일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젊음이 유한하다는 것에 있다. 은퇴한 선배를 보면 75세쯤까지 중년기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유지되고 그 이후에는 노년기가 되어 체력이 확 떨어진다.
75세쯤 된 선배의 이야기다. "75세가 되니 체력이 확 떨어져서 해외여행을 가는 것도 싫더라. 술도 젊은 시절에 비해서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어. 75세 이전에 놀러 갈 거 놀러 가고, 술 마실 거 마시고, 재밌게 살아."
결국, 노화는 어쩔 수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물론 사업이 실패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는 계속 일을 한다. 그러나 많은 친구는 먹고살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일을 찾고, 그 일에서 무엇인가 보람을 얻으려고 한다.
참 행복은 어디 있을까? 정말 우리는 일을 해야만 행복할까?
매일매일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일수록 국민이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강조한다. 40년쯤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새마을운동이 있었고, 전 국민적으로 근면하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장려했다.
새마을 노래,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형편 따라 도리대로 서로서로 도웁세
새마을을 가꾸고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잘살아 보세'
젊은 시절에는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인 소득을 얻고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중년기에서 노년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다. 그런데 대부분 인생을 즐기는 여유를 갖지 못하고 계속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중년기 이후에 어느 정도 경제력이 확보되면 이제는 일에서 벗어나서 인생의 의미를 즐기고, 전반기 인생에서 해보지 못했던 취미들을 후반기 인생에서 즐기는 것도 바람직하다. 인생은 유한하고 젊음도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의 가치
일을 해야 내가 괜찮은지, 아니면 내가 존재만으로 괜찮은 사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뭔가를 이뤄야" 가치 있다고 배운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좋은 직장에 다녀야, 돈을 많이 벌어야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실패하거나 힘든 시기가 오면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조건적 자기 가치"라고 한다. 조건을 만족해야만 나를 괜찮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대하면, 성공할 때는 괜찮지만 실패할 때는 자신을 혐오하게 된다. 마치 내 가치가 주식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무조건적 자기 가치"는 내가 무엇을 하든, 어떤 상황이든 나는 소중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은 나태함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안정적인 자기 가치가 있을 때 더 건강하게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진정으로 성장할 수 있다.
지구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이 있지만,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내가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고, 내가 원하던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게 있어 나는 가장 소중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이기적인 게 아니다. 그것은 생존의 기본이고,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도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