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5시반 기상, 그리고 깨달은 유연성의 중요성

여행이 가르쳐준 교훈,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유연하게 사는 법

by 심상 중년심리

(선유도의 sunset, 군산시 고군산군도)


빡빡한 일정, 불편했던 여행

얼마 전 동호인 모임에서 여행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조금 달랐다. 출발시각이 새벽 5시 반, 6시 반. 보통 여행이라면 여유 있게 즐기고, 때로는 맛집을 탐방하며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이번엔 새벽부터 빡빡한 일정이 이어졌다. 이해가 가지 않았고, 무엇보다 불편했다.

진행을 맡은 총무에게 불편한 분위기를 전달했지만, 총무는 그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계획대로 진행하려는 의지가 확고했다. 회원들도 내심 불만이 쌓였지만, 총무는 회원들의 생각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끝까지 밀고 나갔다.

총무의 진행이 틀린 것은 아니다. 동호회도 나름의 목적이 있으니 그 스케줄대로 충실하게 진행한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목적에 충실한 것도 중요하지만, 친목을 도모하는 성격도 있다. 일단 즐겁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대한 고려가 많이 부족했다. 즐겁고 행복해야 할 여행이 일정이 빡빡해지니 피곤하고 짜증이 났다. 빡빡한 일정에 저녁 8시에 식사하는 일도 있었다. 다시는 이 동호 모임과 여행을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왜 저렇게 경직되어 있을까?

여행 기간 중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왜 총무는 저렇게 경직되게 운영할까? 직장도 아니고 즐거운 동호 모임인데, 왜 저렇게 목적 지향적이고 여유가 없을까?


그 답은 총무의 배경에 있었다. 그는 공무원 출신이었다. 공무원은 목적 자체가 중요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꼼꼼하고 세심하게 진행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그것이 사회에서의 모임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직업이 성격을 만든다.

성격은 타고난 것도 있지만, 많은 부분은 가정 분위기와 어떤 직업을 가졌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향이 있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그 직장의 문화와 업무 패턴이 몸에 체화된다. 특히 나이가 들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군인, 공무원, 은행원처럼 보수적이고 정직하며 경직된 직장 분위기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그 분야의 독특한 문화와 사고방식에 깊이 젖어 있기 때문에 바뀌기가 정말 어렵다. 목사나 교사도 마찬가지다. 모범 시민으로서 타인을 가르치려 드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심리학적으로 이를 '직업 정체성(occupational identity)'이라고 한다. 특정 직업에 오랜 기간 종사하면서 그 직업의 가치관, 행동 양식, 사고방식이 자신의 정체성 일부가 되는 현상이다. 특히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은 '역할 고착(role fixation)' 현상을 보이기 쉬운데, 이는 특정 역할에 너무 익숙해져서 다른 상황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적응과 유연성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적응력과 유연성을 혼동한다. 하지만 이 둘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적응력은 직장 생활에서 부득이하게 변화하는 환경에 나를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사장이 바뀌었을 때, 사장의 경영 철학에 맞춰서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변화한다. 사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직원들의 생각도 바뀌는 것, 이것이 적응이다.

그런데 유연함은 다르다. 유연함은 타인과 이해관계자들의 생각을 읽고,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 서로 다를 때 조율하고 타협하는 능력이다. 정직되고 경직된 문화 속에 있던 사람들은 특히 이러한 유연함이 부족하다.


사회생활에서의 문제

문제는 사회생활이 직장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 모임에 자기가 살았던 직장의 패턴을 고수하게 되면 인간관계가 매우 어려워진다. 같은 문화 속에 있는 직장에서는 그 사고방식이 정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일반 사회에는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 다양한 사람들에게 내가 있던 직장의 문화를 강요하면, 사람들은 피곤해하고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해결책: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그것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나는 젊을 때부터 해외 출장 기회가 많아서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느낀 것은 한국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해외에 나가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동양과 서양,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는 사고방식의 큰 차이가 있었다. 그것을 느끼면서 내가 하는 사고방식이 반드시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그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여행이다.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삶이 얼마나 다양한지 깨달을 수 있다.

특히 터키에서 여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같은 나라 안에서도 사고방식의 차이가 매우 컸다. 터키의 시골에는 이슬람 문화가 정착되어 있어서 정조 관념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부부가 결혼하고 나서 첫날밤을 지낼 때 신부가 정조를 지켰다는 흔적으로 피 묻은 이불을 현관문 앞에 걸어둔다고 한다. 그런데 터키의 이스탄불은 다르다. 터키 이스탄불은 서양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성이 개방되어 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정조 관념이 대도시와 지방은 완전히 달랐다.


책도 간접적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중요하다. 다만 말하지 않고 들어야 한다. 타인의 삶을 진심으로 경청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변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열린 마음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다. 타인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거기서 무엇을 배울까 생각할 때, 거기에서 변화의 출발이 시작된다.


삶은 다양하고, 나이에 따라 아주 다르다. 그것을 느낄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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