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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H Jul 15. 2021

약함의 패러독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0. 

"인간은 선하지 않다.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다. 그저, 약할 뿐이다."

나는 이 말을 믿는다. 인간은 약하다.

이러한 인간의 약함은 대게 악으로 발현된다. 그러나, 가끔은 선으로 포장되어 우리 곁에 숨기도 한다.


1. 

먼저, 악이 되는 것은, 성숙하지 못한 약함이다. 

여기서 약하다는 것은, 자신을 지키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 본인만을 간신히 지키는 것을, 우리는 약함이라 부른다.


고슴도치는 뾰족한 바늘을 표피에 둘러, 연약한 내부를 보호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난 이렇게 강하고, 위험한 사람이다"라고 주장하며 속살을 감싸기에 바쁘다.

타인을 품을 정도로 강하지 않기에, 기꺼이 악으로 전락한다. 


내가 생각하는, 강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정말로 강한 사람은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무서워도, 그 두려움에 가시를 세우지 않는 사람이다. 

약하다는 것이, 타인에게 악이 되어야한다는 말과 동치가 아님을 이해한 사람이다.


2. 

반대로, 자신을 책임지지 못하는 약함은 표면적으로는, 선으로 비추어진다. 

흔히, 이들은 "미움받을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불린다. 

본성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불평을 들을 자신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착한 것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약해서 착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이 표현에는, 강하게 단언하는 경향이 있어보인다.

맞다. 왜냐하면, 나의 경험담이기 때문이다. 


3. 

떠올려보면, 학창 시절의 나한테는 일종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었다.

졸업실 때 썼던 글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있다.  "졸업해서, 잘난 사람보다 좋은 어른이 될게요"


아니, 왜 그래야 하는가? 

"좋은 어른"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고, 왜 그것을 추구해야하는가?

과거에는 삶의 의미가 되었던 지표들이, 

내가 했던 선행들이, 

아니 선행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을까? 


4. 

성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시작한 뒤, 많은 것들에 회의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회의적이라는 것이 감정적으로 격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니체는 "웃음없는 진리는 가짜 진리"라고 했다. 이처럼, 진지한 고민에 매몰되지 않고, 관조하며, 항상 장난스럽게 대하는 법을, 나는 배워냈다. 그래서 감정적으로는 하등 감흥이 없다.

그저, 하나 아쉬운 것은 있다면,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도덕적 행위에서, 이제는 본질적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5.   

그 모든 것들이 진지한 내적 성찰의 결과물이었을까? 

그저 자기 도취 또는 자기 만족을 얻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타인에게 미움을 받을 용기가 없었던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 

자기 삶에도 책임지지 못하는 주제에, 

그저 더 쉬워보이는 타인의 삶으로, 

무작정 착해보이는 무형의 삶으로, 뛰어들었던 것은 아닐까?


6.

약해서 착한 이들은 행복하다. [젊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는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한 책이다.

거짓, 기만으로 행복한 정상인의 삶보다, 고통으로 의미있는 정신병자의 삶을 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비정상의 정상성, 미친 사람만이 자신으로서 삶을 살아낸다고.

책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죽음이 다가오는데도 넌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 거야?

네가 폐를 끼친다든지 이웃에 방해가 된다든지 하는 생각 따윈 집어치워!

만약 네 행동이 사람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 되는 거야

그들한테 그럴 용기가 없다면, 그건 그들 문제지"

"자존심이란 게 뭔데? 모든 사람들이 널 착하고 예의 바르고,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넘치는 사람으로 여기길 바라는 게 자존심이야?"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게로 떠밀려가진 않을 테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무슨 실수를 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

단 한 가지,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실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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