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나는 매일같이 믿지도 않는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에게 기도를 하고는 했다. 할머니를 오래 살게 하지 않으면 나도 콱 죽어 버리겠다는 협박을 곁들여서. 물론 하느님에게 있어서 어린양 하나가 더 오는 건 좋은 일이었을 테지만 말이다.
막상 나에게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다지 떠오르는 게 없다. 그저 단편적으로 물총, 간장 라면, 두 글자로 된 막대 과자 같은 것들이 떠오를 뿐이다. 외갓집은 좀처럼 다같이 모이는 법이 없었다. 내 모든 기억을 통틀어서도 그랬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할머니와의 다양한 추억이 없는 것은.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해 종종 할머니에게 맡겨지고는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주로 할머니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할머니가 우리 집까지 먼 길을 오가고는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먼 길을 군말없이 오가는 것은 사랑이었겠지. 그렇다면 누구를 향한 사랑이었을까. 나? 엄마? 혹은 둘 다? 그것도 이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지금보다 더 제멋대로고 나 외에 중요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도 내게 있어서는 그냥 할머니일 뿐이었다. 그 탓에 이제 와서는 마음에 남을 만한 일도 저지르고는 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물총 사건이다. 어린아이들은 여름이면 그러하듯 나도 물총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작은 물총이었는데, 어느 날 할머니가 청소를 하면서 그 물총을 부수고 말았다. 나는 부서진 물총을 보고는 할머니를 원망하고 꼬집고 울고 떼를 썼다. 그러니까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분노 표출을 다 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손녀를 보며 알겠노라고 겨우 달래고 다음 날, 혹은 며칠 뒤 내가 가지고 있던 물총보다 더 크고 좋은 물총을 사 왔다.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늘 나를 신경 써 주었고 엄마와 내가 싸웠을 때도 내 편을 들어주고는 했다, 나는 내심 그런 할머니가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몇 년 전 설 연휴 할머니가 갑작스럽게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날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을 건강할 것 같던 할머니가, 백 살이 넘도록 오래 살 것만 같던 할머니가 쓰러졌다. 자는 도중에 뇌졸중이 발병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이 응급실에서 저 응급실로 옮겨다니면서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만 처치가 늦어져 움직이지도 말을 하지도 못한 채 누워 지내게 됐다. 엄마는 또 엄마대로 긴급 상황이 되어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할머니를 간호하러 서울과 전주 사이를 오갔다. 철없는 나는 마음속으로 할머니 때문에 엄마가 고생한다며 원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쯤 지나자 엄마도 힘에 부쳤는지 전주로 가는 발길을 멈췄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요양원에 들어가게 됐다. 내가 그때쯤에야 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었다. 명분은 간단했다. 영화 아카데미 수업에서 다큐멘터리 만드는 것을 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주제를 할머니로 잡아서 할머니를 찍어야 한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나름대로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나는 몇 년, 혹은 정말 십 년 만에 달라진 할머니와 마주하게 된다. 백발의 짧은 머리, 환자복을 입은 채 힘이 없는 눈으로 가만히 누워 있는 할머니는 살도 제법 빠져 있었다. 고기를 좋아하던 할머니는 이제 환자식밖에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살이 빠진 걸까. 제대로 씹지도 못해서. 나는 머쓱하게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방 안에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부족한 실력으로 할머니를 잡으려 애썼다. 캠코더 뷰 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아, 아" 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할머니.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제대로 된 처치를 해 주지 않은 병원을 원망하기도 잠시, 나는 괜한 사명감에 불 타올랐다. 어쩌면 이런 할머니의 모습이라도 담아내서 나중에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생각. 그래서 나는 열심히 찍었다. 영상에서는 엄마가 자꾸만 계속해서 할머니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저 아이가 누구인지 아냐는 엄마의 물음에 할머니는 또 "아, 아" 하고 말을 했다. 촬영은 그런 식이었다 그냥 무작정 할머니를 담는 것. 내가 할머니에게 웃어 보라고 했지만 할머니는 웃지 못했다.
서울과 전주의 거리라 자주 가지 못했지만 나는 그 후로도 두어 번 정도 할머니를 더 보러 갔다. 그 중 한 번은 엄마와 대판 싸우고 무작정 전주로 내려갔을 때였다. 에어비앤비에서 하루를 보냈던 나는 문득 할머니를 보러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오후, 나는 무작정 요양원으로 향했고 우연히 할아버지와 삼촌과 마주쳤다. 그것은 정말 우연이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렇게 어색하게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막상 할머니를 마주하자 기분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친한 척 반말로 말을 붙였다. 막상 할머니가 건강할 때는 그렇게 말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건강하라고, 다시 건강해지라고, 그래서 오래오래 살아 달라고.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하면 꼭 이루어질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다. 할머니는 그러고도 꿋꿋하게 사오 년을 더 살았다. 중간에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고도 할머니는 살아남았다. 나는 그때 내 기도가 먹혔다고 생각했다.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 부처님, 어쨌든 많은 신들이 내가 불쌍해서 내 말을 들어 준 거라고. 그러니까 어쩌면 기적이 일어나서 할머니가 점점 더 쾌차할 수도 있고 생각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나는 삼촌이나 할아버지에게 오는 벨소리를 들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는 했다. 그랬다가 전화를 받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심 안도를 하고는 했다. 하지만 이런 것도 결국은 지속될 수 없었다.
내가 자는 척 뒹굴거리던 어느 날, 삼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 뒤를 잇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는 더는 자는 척을 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