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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렁공주 May 04. 2021

괜찮아, 얘기해봐

진짜괜찮은 거맞아?

 첫째가 6살이었을 즈음,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남자아이들의 엄마들과 모임이 끝나고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 한 아이가 장난을 치다 딸아이를 밀쳐 복도에서 넘어진 적이 있었다.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의 천방지축에 너무 놀라기도 했거니와 그 아이의 엄마와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잘못했을 때 바른 소리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내가 얘기 좀 해도 되냐 묻지도 않고, 장난도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고 나무라는 말을 했다.  순간 싸한 기운이 돌았다. 평상시에는 상냥하고 항상 웃는 얼굴의 그 아이 엄마의 표정이 굳어있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하면 나는 사과가 먼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자기의 아이가 밀치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걸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자신이 뭐라고 하기 전에 아이가 먼저 사과하길 바래서였다 했고, 자신의 아이를 다른 이가 나무라는 건 싫다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다른 이의 아이들에게 절대 듣기 좋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못 볼 꼴을 하면 그 자리를 무슨 이유를 대고 나오건,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리건 했지 예전처럼 훈계를 하지 않는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한 번의 트라우마로 예전 우리의 이웃 어른들이 같이 아이를 키우듯 진심으로 그 아이들을 생각할 수는 없어졌다. 


 그 이후로는 누구 와든 얘기를 할 때 "괜찮으니까 솔직하게 말해줘"류의 나의 솔직함을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들으면 '진짜 솔직해도 괜찮아? 말하면 기분 나쁠 거면서...'라는 생각이 먼저 앞선다. 대부분은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의미 없는 미화 어구들로 그 자리를 모면하지만 상대가 집요하게 혹은 꼭 필요하다며 물어오면 굉장히 두리뭉실하게 좋지 않은 얘기라면 절대 상처 받지 않을 만큼만 얘기를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조심한다고는 하지만 말의 뉘앙스라던가 표정 때문에 속마음을 살짝 들키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또 그런 뜻은 아니었다 얘기를 해야 하고... 더 이상 깊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 진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바둑기사인 택이가 큰 대회에서 지고 온 날, 동네 주민들은 모두 쉬쉬하며 "다음에 잘할 수 있을 거 아, 이번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냐"며 다독이는 반면, 절친들은 "이 새끼, 졌다며? 너니까 이겨야지"라며 욕 한번 가르치고 오히려 쉽게 얘기해 택이를 부담에서 내려 주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니까 가능한 것 같다. 나의 모든 흑역사를 알고 있는 절친들끼리 더 숨길 것이 뭐 있겠는가. 반면 사회에 나와 만난 친구들은 아무리 친하다 해도 속에 있는 말을 입으로 뱉으면 안 되는 거 같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키고 긍정적인 이야기로 상대의 감정을 북돋아 주는 게 맞는 거 같다. 


 내 주변에는 항상 좋은 말로 기분을 좋게 해주는 이들이 있다. 

똑같은 아줌마의 삶, 해외에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느끼는 것도 비슷할진대 만날 때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으며 내가 하는 일을 응원하고 좋은 방향으로 얘기하는 그런 사람들. 가끔은 이것이 가식인가 싶을 정도로 좋은 말만, 좋은 피드백만 주는데 내가 그렇게 훌륭하지 않은 걸 알면서도 듣기 싫지 않다. 그들을 만날 때면 나도 이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에 약간의 거리감은 있다. 그들의 환상을 깨기 싫어 내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온전한 날것의 나' 대신에 '준비된 나'를 보여 줄 수밖에 없고 그러기에 만나는 횟수는 잦으면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친해서 예전의 나처럼 가감 없이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 앞에선 준비되지 않은 나를 보여줘도 신경 쓰이지 않고, 함께 솔직을 공유하며 어떤 일에 대해 얘기하고, 자주 만나도 부담이 없는 사이지만 간사한 것이 사람 마음 이라더니 같이 얘기를 하다가도 가끔 그 솔직이 나를 움츠려 들게도 한다. '나에 대해서도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아닐까?', '행동 조심해야겠다'

안 그래도 해외에 살다 보니 외국인으로 튀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도 있고 조심성이 많아지는데 남들 눈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뭐가 더 좋다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지금의 나는 "괜찮아, 솔직하게 얘기해줘"라는 질문에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불편한 진실' 말고 '긍정의 대답'

자신은 모자란 거 같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나 생각할지라도 "솔직히 얘기하면...." 류의 말로 시작되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를 아끼고 응원하고 싶다면 내 안의 솔직함은 꾹꾹 누르고 상대가 가식이라 느낄 정도의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왜 난 어제 자기가 반에서 수학을 제일 잘한다는 둘째에게

"에이~그건 아니지"라며 팩트를 날렸을까... 아이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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