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상담을 받고 온 아빠는 화가 나 어쩔 줄을 몰라했다.
엄마가 확인하라고 몇 번이나 일렀으나 인사과에서 알아서 해준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빠는 스스로 사직서를 쓴 권고사직자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없었다.
그에 반해 함께 퇴직했던 동료분은 사직서에 권고사직이라는 문구 하나를 더해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회사에 고문으로 바로 취업이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힘들게 동굴의 입구까지 왔던 아빠는 그 앞에서 한 걸음을 더 떼지 못하셨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시골로 내려가겠다는 말을 했다.
시골에 가겠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우리를 떠나려 했던 아빠였기에 매우 불안한 상황의 데자뷔 같았지만
나는 더 이상 말릴 기운도, 추궁할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휴게소에 들를 때마다 문자 달라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할머니가 하늘에서 아빠를 지켜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약대 준비에 힘이 부칠 때 할머니 산소에서 할머니 아들에게 효도할 테니 그만 합격시켜 달라고, 위에서 힘을 좀 써달라고
생떼 피우듯 말한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지금 이 상황을 염두에 두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정말 큰 그림이 아닐 수가 없다.
아빠는 할머니 산소에서 자신의 부모님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이제는 그들의 아들 역할보다 우리의 부모 역할에 더 익숙한 아빠는 과연 어떠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채워 넣었을까.
아빠는 그 길로 막내삼촌 집에서 하루, 큰고모 집에서 하루를 묶고 왔다.
자신의 동생과 누나의 집에서 자신과 같은 뿌리를 공유한 이들과 오로지 그들과만 할 수 있는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는 막내삼촌 회사에 신호수를 하러 내려갔다. 그 회사는 삼촌이 사업을 말아먹고 아빠가 소개해준 회사였다.
이렇게 상황이 역전될 줄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결론을 내고 온 아빠를 환영했다.
그게 비록 집에서 네 시간 떨어져 있어 다시 타지 생활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일지라도.
삼촌은 신호수를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고 눈물 가득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그렇게 똑똑했던 자신의 형이 카리스마 있게 현장을 관리하는 것이 아닌 멍한 모습으로 빨간 봉을 들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이질적일 뿐 아니라 안쓰러웠을 것이다. 더욱이 한평생 가족과 떨어져 고생했던 형이 퇴직하고 나서도 집에서 멀어져 아니 더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서글프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에겐 그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모습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라면 기꺼이 해야지, 자신이 벌인 일인데 자신이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모든 걸 짊어졌다고 한껏 울상이 된 나 자신에게 취해있던 나는 나 때문이 아닌 아빠 때문에 그런 습기 가득한 목소리까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빠는 더 이상 감시자 없는 삼촌의 방에서 술, 담배를 다시 시작했다.
여기서 아프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며 그렇게 조심시켰던 술과 담배였다.
보건소에 가서 금연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찰나였다.
그 모습에 오빠는 더 이상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제 그만 나는 나를 갉아먹는 사치일 뿐인 자신 연민을 그만두고 노선을 정해야 했다.
아빠를 포기할 것인가,
나라도 붙잡을 것인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나도 그렇게 아빠의 전화를 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