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시 시작

by 손일금

은퇴라는 말이 무색하게 부모님은 다시 사회로 돌아가야만 했다.

건설 회사에서 근무했던 아빠는 전국 방방 곳곳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은퇴하면 캠핑카 하나를 빌려 엄마와 온 도시를 누비며

여유를 누리고 싶은 것이 아빠의 소망이었고 엄마는 다니는 김에 작고 예쁜 사찰을 정복하는 걸 목표로 삼자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지금 우리를 양육할 때보다 더 큰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장의 사고를 수습하고 나서도 노후가 남아있었고 현재 여력으론 예전만큼의 경제력은 냉정한 현실에서 어렵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아는 업체들의 고문으로 채용되길 바랐던 아빠는 우리가 이제 다른 일자리를 찾자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완강히 거부했다.

형 동생 하던 사람이라며 한 달만 기다리라 했다, 연락을 주기로 했다, 등등의 말을 기대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그러다 엄마가 집을 비운 사이 아빠와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순댓국은 아빠와 나의 유대감을 이어주는 음식이었다. 엄마가 순대를 먹고 크게 체하신 후론 먹지 않으셨기에 아빠와 둘이 밥을 먹을 때면 어김없이 순댓국을 먹었다.

집 앞에 새로 생긴 순댓국 집으로 향해 각자 순댓국 하나를 시켜두고 아빠는 순대 하나를 더 먹자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소주 한 병을 시켰다.

나는 그릇에 코를 박고 먹었다.

야위어진 아빠가, 남루해져 버린 것 같은 아빠를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아빠를 보며 말을 할까 말까 수십 번을 망설였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뗐다.

“아빠, 나 요새 너무 힘들어”

뭐가 힘든지, 왜 힘든지 아빠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사지 멀쩡하고 아직 환갑이 되지 않은 엄마와 아빠가 왜 걱정되냐 다그쳤지만 이미 아빠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순댓국 집에서 아빠와 나는 마주 앉아 순댓국보다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리며,

순댓국보다 뜨거운 응어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코가 새빨개진 채 결제를 하러 갔을 땐 주인집 이모가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렇게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아빠가 자신의 방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나에게 택시 운전 면허증 책을 사달라고 했다.


그래 좋아, 그렇게 무엇이든지 다시 시작해 보자.


나는 희망을 본 듯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