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폭풍우가 휩쓸고 간 일상

by 손일금

병원의 사정으로 나이트 근무로 전환되었다.

나이트는 상근직이 퇴근할 때 출근해서 다음날 상근직이 출근할 때 퇴근하므로 압도적인 업무시간을 가진다.

대신 오프를 하루 주기 때문에 유동적인 시간 관리가 가능하다. 즉, 집에서 부모님과 코어타임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나는 그때 부모님의 관계를 직관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침묵의 전쟁이었다.

부모님은 그렇게 적막을 깨우는 나의 퇴근만을 기다렸던 것일까..?


하지만 이제 남들 일어날 때 자고, 잠자리에 들 때 하루를 시작하는 나에게 그러한 역할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더 이상 밝기만 한 막내딸의 역할을 하기에 힘이 들었다.


엄마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는 요양보호사 대신 간호조무 자격증을 따기로 했다.

앞으로 몇 년 남지 않은 경제적 기간에 적당한 투자인지는 따져보지 않기로 했다. 그저 일 년만이라도 고정적인 수입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택 중 최선이었기에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 길에 항상 내가 동행했다. 학원에서 상담을 받을 때도 엄마의 상황을 잘 정리하여 가장 배려받을 수 있는 조건에서 수업과 실습을 들을 수 있게 조정하였다.

그렇게 엄마는 야간 수업을 나갔고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빠와 엄마 마중을 나갔다.


장마가 끝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밤.

아빠의 발걸음이 늦춰지자 이를 앞당기며

새끼손가락에 손을 걸었다.


문득 지금 우리의 상황을 대변하는 듯했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인 아빠를 새끼손가락에 걸어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그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우리를 기다리는 엄마.

눈물이 났다.


아빠가 물어왔다. “요새 스트레스 많이 받아? 병원에서 검사 결과가 안 좋다고 연락 왔던데... “

그렇다. 잊고 있었지만 나는 암환자였다. 주기적으로 정기검진을 받고 있었다.

항상 시니컬했던 주치의가, 그 앞에서 항상 해맑었던 내가, 미묘해진 검사 결과로 지금 내가 괜찮지 않음을 알려주었다.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이렇게 다시 아빠랑 산책할 수 있어서 좋아. 다음 달이면 다시 괜찮아질 거야. 걱정하지 마.”

“... 아빠 이제 그런 생각 안 해. 그러니까 스트레스받지 마.”


진정 내가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아빠는 모르는 듯했다.



그저 이렇게 조용히 하루의 마무리를 맞이할 수 있는 감사함이 나를 울적하게 만들 뿐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