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일이 생겼다. 매우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가 생겼다.
내가 반 오십, 그러니까 스물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암에 걸렸을 때도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친한 지인들에게는 알려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아빠가 우리 모두를 버리려 했다가 열 손가락 중 여덟 손가락에 화상만 입은 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면 안 되었다. 그건 나도, 아빠도 두 번 죽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빠와 함께 집에 있을 수 없었다. 어디든 나가야 했고 나라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친구를 만날 수도 없었고 아무렇지 않은 척 수다를 떨며 맛집 웨이팅을 하고
카페에 가 아메리카노를 먹을까, 시그니처 라테를 먹을까 고민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엄마와 함께 나와 울기엔 나는 이미 지쳤다. 엄마에게 미안했지만 나는 이제 아빠를 엄마에게 버렸다.
안 그러면 나도 죽을 거 같았다. 엄마는 나를 끌어안고" 불쌍한 것, 이 불쌍한 것"이라며 되뇌었지만 나는 외면했다.
엄마가 있는데 내가 왜 불쌍해, 나 괜찮아. 라며 엄마를 애써 위로했고 우리는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아빠를 버렸다.
엄마를 버리지 못했을 뿐.
이제 우린 옛날의 단란했던, 주말이면 소파에 모여 앉아 허허 웃음을 나누며 드라마나 보던 그런 가족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 모든 걸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블로그는 이미 많은 친구들과 공유 중이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는 글 쓰는 공간이라곤 브런치와 세줄 일기뿐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아무도 모르는 이곳으로 도망쳐왔다.
나는 이제 여기서 나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나는
스물다섯에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암 환우이자,
대학병원 약사이자,
아빠의 빚을 대신 짊어진 가장이자,
완벽한 독립을 꿈꾸는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