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 책육아 다 소용없네

거대한 책장을 허물고 마주한 '진짜' 책육아

by 카인드마마

첫째 아이의 영유아 시절,

초보엄마인 나는 인터넷 정보의 호수에 빠져 살았다.

카더라 정보는 물론, 각종 육아서와 강의까지.

육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끌어다 배웠다.


그중 내가 가장 꽂힌 것이 있다면 '책육아'였다.

기질이 순한 첫째 아이는 엄마와 책 읽는 시간을 즐겼고, 어떤 책이든 보여주는 대로 잘 보는 아이였다.

신이 난 나는 몇 개의 카페에 가입해 공구가 뜰 때마다 전집이며 단행본이며 가리지 않고 집으로 들여왔다.

책장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거실 벽 전면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책장을 짜 넣어 집을 도서관으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아이는 말을 빨리 했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했으며,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다.


초등 3학년을 앞둔 시점이다.

아이는 내 바람대로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마음에 소리가 들리고 말았다.


에이,

책육아 다 소용없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되돌아봐야 했다.

그 지점은 이랬다.

매일 연습하고 갔건만 받아쓰기 시험에서 꼭 한두 개는 틀려 왔을 때,

수학 단원 평가에서 백 점 맞는 날이 드물었을 때.

그러니까, 학교공부가 만족스러운 숫자로 산출되지 않았을 때 '책육아'에 대한 실망을 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란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똑똑한 아이가 되길 바랐던 것이 분명하다.


아차,

정신을 차리라는 신호가 느껴진다.


거실을 점령하던 책장을 철거했다.

남편과 하루 종일 책장을 철거하고, 버리고, 방을 재배치하면서

나의 욕심과 욕망도 내다 버렸다.


책장을 허문 일은 순간적인 결심은 아니었다.

높은 책장이 주는 부담과 위압감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신호는 그간의 마음의 소리를 종합해 볼 수 있는 계기였다.


거대한 책장이 압도하던 거실이 단정하고 차분해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아이들의 시선에 맞게 배치해 두고,

큰아이 방에는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책들을 꽂아두는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빈 공간에는 아이들의 꿈을 간직해 줄 예쁜 텐트도 쳤다.


아이들은 거실의 변화를 크게 반겼다.

텐트에서 여러 가지 놀이를 하고, 공간을 옮겨가며 좋아하는 책을 보았다.

큰 아이는 본인이 좋아하는 책을 모아 놓고 '베스트셀러'라고 이름을 붙여두었다.


학년이 마무리가 되어 갈 때쯤, 아이가 하교 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내가 우리 반에서 2학년 추천 도서를 두 번째로 많이 봤어!"

아이와 함께 나도 너무 뿌듯했다.

학교에서 준 추천 도서 리스트의 책을 매주 제공해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책을 다 살 수는 없기에 도서관에서 매주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를 2년을 했다.

꽤나 번거롭고 힘든 일이었지만, 아이의 그 말이 앞으로 또 몇 년을 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첫째 아이의 영유아 시절 사들인 책들은 일부는 방출하였고,

일부는 둘째, 셋째 아이가 봄으로써 가성비가 조금 올라갔다.

하지만 첫째 아이만큼 책을 많이 보지도 않고, 나도 아이들을 끼고 앉아 책을 읽어줄 수 있는 상황도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책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많이 내려놓았다.

덕분에 둘째, 셋째는 내가 생각하던 '책육아'와는 조금 거리가 멀게 크게 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잠자리에 꼭 책을 가지고 온다.

이제야 '책육아'의 목적을 알 것 같다.

그것의 핵심은 '행복한 교감'이었다.

엄마가 재미있게 읽어주던 그 기억, 엄마의 품에서 듣는 엄마 목소리.

같은 책을 몇 번이나 읽어 외울 지경이 되어도 그 책이 또 재미있어지는 신기한 경험이 '책육아'가 주는 선물이었다.


어릴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책과의 거리가 멀지 않았던 것은 장점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 가장 큰 책장이 허물어지면서 아이들의 보이지 않은 경계도 허물어진 느낌이 든다.


한글을 좀 늦게 깨치면 어떠하고, 학교 공부가 뛰어나지 않으면 어떤가.

나는 아이들과 책으로 행복했고, 아이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책 리스트가 존재한다는 것이 감사하다.

책육아에 목적을 두지 않자, 모든 것이 편안해졌다.


그렇지.

이쯤에서 다시 들리는 내 마음의 소리를 꺼내어 본다.



에이,

책육아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