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구해 낸 시간
누군가에게는 나른한 커피 한잔의 시간.
오후 3시.
나는 앞치마를 두른다.
점심 먹고 돌아서서 저녁준비라니.
어쩌면 나를 과하게 부지런한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해는 하지 마시라.
나는 멀티가 안 되는 아날로그 인간일 뿐이니까.
내가 오후 3시에 저녁준비를 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달 전이다.
여느 때처럼 삼 남매가 모두 돌아오고, 오후 6시에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 남매는 돌아가며 무엇인가를 요구했고, 엄마가 그 요구를 충족시켜주지 않자 각자의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하나는 짜증을 냈고, 하나는 울었고, 하나는 주방에서 나를 자꾸 밀어내며 다리에 매달렸다.
7시가 되어도 저녁 준비는 다 되지 못했고, 아이들은 씻지도, 그날 해야 할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고서는 이 주방에 더 서있을 자신이 없었다.
엉망진창의 저녁을 보내고, 그날 결심했다.
아이들 하원 전에 저녁 준비를 모두 끝내야겠다고.
첫째 아이는 2시쯤 하교 후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하거나 태권도를 간다.
둘째, 셋째는 4시에 하원을 하니 3시부터 4시까지의 이 한 시간은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그야말로 황금시간대였다.
오후 3시의 주방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거나, 보고 싶었던 TV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세상 여유 있게 주방에 선다.
냉장고를 차분히 스캔하고, 일의 순서를 정하는데 방해되는 요소가 단 하나도 없다.
삼 남매의 취향과 영양을 고려하기에도, 이 시간은 충분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 두 가지와 국을 끓인다.
전날 다 먹지 못한 반찬도 있을 테니 이렇게 하면 5구 식판을 가득 채워 낼 수 있다.
밥은 미리 해두면 맛이 없으니 4시 하원시간 직전에 쌀을 씻어 물에 담가둔다.
아이들을 데리고 5시쯤 집에 돌아오면 바로 밥을 짓는다.
밥이 되는 사이 아이들을 씻기고 욕조에 물을 받아주면 신나게 물놀이를 한다.
보글보글 국이 데워지고 밥솥의 추가 바쁘게 돌아가는 기막힌 타이밍에 욕실에서 들리는 소리.
"엄마~ 나 나갈래~~"
아이들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자면 뜸이 다 들었다는 밥솥의 알림음이 들려오고,
아이들의 배고프다는 외침이 퍼즐처럼 맞물릴 그때.
나는 바로 저녁식사를 낼 수 있다.
식탁에 앉은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내 모습이 위풍당당하다.
아직까지 아무도 울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음이 이미 내게 훈장이다.
저녁을 다 먹고 나면 아이들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봐줄 여유가 생긴다.
올해 열 살이 된 첫째는 학교 숙제와 오늘 해야 할 공부를 하고,
여섯 살 둘째는 첫 수학공부를 시작했다.
네 살 셋째는 돌아다니면서 형과 누나를 방해하는 것으로 오늘의 할 일에 열과 성의를 다 한다.
7시 30분 즈음,
각자 할 일이 끝나면 드디어 TV시청시간이다.
예전 같았으면 겨우 저녁식사를 하고, 씻는 것도 공부도 시작하지 못하고 있을 시간이다.
아이들이 TV를 보는 시간 동안 나는 재빠르게 설거지를 하고, 남편이 돌아오면 저녁을 차려낸다.
이 정도면, 나름 잘 흘러간 하루다.
저녁식사 준비는 저녁에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리니 저녁시간의 스트레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루의 시계를 '나의 시계'에 맞췄더니 기적이 일어난 느낌이다.
오후 3시에 저녁을 준비한다고 해서 내 삶이 더 부지런해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수면 시간이 당겨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저녁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를 먼저 구해낸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가장 나른한 그 시간에 앞치마를 두르지만,
이 시간은 분명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오후 3시는 마치 연습게임, 혹은 튜토리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나는 수많은 시간을 살아낼 테고, 세상의 시계가 아닌 '나만의 시계'를 보게 될 감사한 순간이다.
이 또한 삼 남매 육아가 나에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오늘도 이렇게, 나만의 결론에 도착한다.
오늘도 너희들이 엄마를 키우는구나.
Thanks to my ki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