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었다.
아침 일찍 교회에 갔다가 아울렛에 잠시 들렀다.
필요한 것을 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중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별로 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벌써 오후 네 시였다.
차에서 잠을 잔 삼 남매는 에너지가 충전된 상태였지만, 나의 상태는 커피 두 잔이 무색했다.
아이들은 돌아가며 무언가를 요구했고, 그날따라 내 컨디션은 아이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
레고 블록이 와르르 쏟아져 있다.
소파와 한 몸이 된 남편의, 바로 앞이다.
남편은 소파와 혼연일체가 된 채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터져 나오려는 잔소리를 꾹 참아본다.
“얘들아, 정리하자!”
범인들을 소환해 함께 정리를 하자고 했다.
정리를 하다 말고 만들어 놓은 레고블록으로 놀이가 시작되었다.
막내가 누나의 것을 들고 도망을 가고 화가 난 둘째가 분노의 추격을 한다.
막내에게 다른 레고 자동차를 주겠노라 설득하며 상황을 재빠르게 종결시켰다.
“오~ 우리 와이프 현명해~!”
여전히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남편의 목소리다.
그 핸드폰이나 좀 내려놓으라고 잔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다시 한번 참아낸다.
아이들은 레고로 상황극을 하며 내 주변에서 논다.
내가 자리를 옮기면 아이들도 따라 옮겼다.
막내는 자동차로 ‘부릉부릉’ 소리를 내면서 누나에게 자꾸 “이름이 뭐예요?” 묻는다.
첫째는 관심도 없는 동생들에게 무언가 보여주겠다고 하고, 아이들은 제각각 하고 싶은 말들만 했다.
10살, 6살, 4살 아이들은 각자의 언어로 따로 또 같이 레고세상에 있었다.
어이없고 황당한 아이들의 모습에,
웃어버렸다.
“행복해?”
멀찍이 앉아 아직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는 남편이 입꼬리를 올리며 내게 물었다.
‘뭐라는 거야. 난 아직 소파에 엉덩이도 못 붙여 봤는데! 핸드폰만 보면서 이 남자 오늘 상황파악을 못하네.’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편의 그 말이 자꾸 맴돌았다.
나 행복한가?
내가 행복해 보이나?
왜?
난 오늘 너무 피곤하고 힘든데..
그러고 보니 남편은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마다 물었다.
예뻐?
그렇게 귀여워?
불현듯 남편의 시선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오늘 남편이 핸드폰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아이들 옷 담당인 남편에게 둘째 아이의 봄옷이 필요하다고 오더를 내린 것은 나였다.
남편은 틀림없이 성실하게 그 일을 수행하고 있었을 테다.
남편 입장에서 그것은 ‘팀 플레이’ 였을 것이다.
내가 아이들과 놀고 있으니, 본인은 소비요정의
본업에 충실한 것.
내가 생각하는 팀 플레이와는 사뭇 다르지만, 남편에게는 그것이 합리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 남편의 사고를 이해하기에 오늘만은 핸드폰에서 손을 놓지 않는 남편에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대신 첫째 아이가 아빠는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본다며, 볼멘 사이다 발언을 날려주어 내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내가 아들 하나 참 잘 키웠지!
남편에게 자꾸 고마웠다.
행복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체력의 고갈을 핑계로 아쉽게 흘려보낼 뻔했던 내게 ‘너 지금 행복하다’고 알람을 해 주었으니.
아내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행복하느냐 질문한 남편에게도 그 행복이 가 닿았을 테다.
아이들 옷을 고르고 있는 아빠의 귀에 들려오는 가족의 웃음소리가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행복은 원래 ‘찰나’ 같은 것이라 했다.
행복은 원래 ‘순간’이라 했다.
그래서 행복은 목표나 목적이 될 수 없다.
일상을 살며 매일, 순간순간 만나는 것.
그래서 행복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더 자주 알아차리는 사람의 몫이다.
오늘 내가 행복했음을 알아차리게 해 준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는 나의 특별한 행복 알람 시계였다.
그래도…
인터넷 쇼핑은 육퇴 후에 하는 걸로.